"누가 호미를 이렇게 예찬할 수 있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2년 11월 06일
↑↑ 문무학 한국예총 대구시연합회 회장
ⓒ 고령군민신문
누구에게나 누이 같고 언니 같으며 만인의 어머니 같은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조금 더 사시면서 우리에게 삶의 길을 안내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서운함이 참으로 크다.
날씨마저 몹시 추운 때라 가시는 길이 어떤지 모르지만 슬픔이 더 하다.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셨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떠나시면서 남긴 말들이 선생을 참으로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대통령이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듯이, 그의 장례식이 조금 요란해도 크게 나무랄 사람 없을 테지만 천주교식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거기다. “가난한 문인들에게 돈 받지 마라.”는 유언을 하시어 조의금을 사절하였다.
이 두 가지 사실에서 참으로 느끼는 바가 많다. 정신의 소박함을 읽어낼 수 있고, 후배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은가를 알 수 있다.
세상이 이기주의로 흘러 제가 살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배신을 일삼고, 중상모략 이 판치는 때, 참으로 신선한 바람이다.
그런 정신이 바탕이 되어 선생의 작품이 만인의 가슴을 적셨는지도 모른다.
예술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책 한권 읽지 말고 공연장이나 전시장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세상에서 예술가들이 왜 필요한가를 느끼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을 겸손하게 살라는, 그리고 남을 배려하며 살라는 뜻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여 선생의 떠남을 더욱 아쉬워하게 하는 것이다.
문인들 뿐 아니라 모든 예술인들은 이 위대한 예술가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유언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후배들을 배려하는 그 마음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정신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선생은 산문집 『호미』의 마지막 글 ‘딸에게 보내는 엄마의 편지’ 에서 “엄마가 말년을 깔끔 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다오.”라고 썼다.
그러니까 선생은 깔끔한 말년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생의 말년은 ‘깔끔함’을 넘어 위대하게 정리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이 보다 더 큰 가르침을 주고 세상을 떠날 수 있겠는가.
다시금 책꽂이에 꽂힌 『호미』를 꺼내 본다.
전원에서 자연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며 사는 사람의 여유로운 삶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꽃출석부’를 만들어 꽃의 이름을 부르며 사는 저자가 오랜 시간 잡고 있었을 호미를 예찬한 글은 이 책을 쉽게 잊지 못하게 한다.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유려한 선과, 팔과 손아귀의 힘을낭비 없이 날 끝으로 모으는 기능의 완벽한 조화는 단순 소박하면서도 여성적이고 미적이다.
호미질을 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었을까 감탄을 새롭게 하곤 한다.”
누가 호미를 이렇게 예찬할 수 있는가.
저자의 표현처럼 ‘감탄을 새롭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백무산 시인은 “평생 여자가 맨 고랑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여자의 몸은 둔덕처럼 두두룩하니 굽어져있어/ 고랑에 들면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라고, 한평생을 밭일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 여인의 생애를 호미에 빗대 노래한 적 있었지만, 호미를 이렇게 아름답고 적절하게 묘사한 글을 지금껏 읽지 못했다.
박완서 선생께서 떠나셨다는 소식 들으며 맨 먼저 떠오른 것이 이 글이었다.
그리고 평생 호미를 놓지 않으시고 아흔 여섯의 삶을 살다 떠나신 우리 어머니가 호미에 오버랩 된다.
박완서 선생의 영전에 멀리서 우리 어머니 떠나시고 썼던 졸시를 바치며 위대한 예술가의 삶이 어떤것인가를 오래 생각할 것이다.
“한 평생 흙 읽으며 사셨던 울 어머니/ 계절의 책장을 땀 묻혀 넘기면서 /호미로 밑줄을 긋고 방점 꾹, 꾹, 찍으셨다.// 꼿꼿하던 허리가 몇 번이나 꺾여도 //떨어질 수 없어서 팽개칠 수 없어서 /어머닌 그냥 그대로 호미가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