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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의 애환 간직한 ‘고령 가야금’

대가야의 힘·문화·예술적 역량 보여주는 상징적 악기
‘예악 통해 사회통합·개혁’가실왕 명받아 우륵이 창제
현 12개 12달 나타낸 것…높이 3치는 천·지·인 상징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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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읍 우륵박물관 전경
ⓒ 고령군민신문

우리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전통악기의 하나인 가야금.
그 이유는 1천5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가야금 속에는 민족의 애환과 슬픔이 고스란히 서려있다.
가야금에는 대가야의 지식인이자 예술인으로서 가야금을 통해 쇠퇴해가는 나라를 바로잡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은 멸망을 지켜봐야 했던 우륵(于勒)의 슬픔이 서있다.
가야금은 멸망당한 대가야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채 신라의 궁중악기로 정착됐다.
그 후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가야금은 국가의 중요한 악기였지만,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지위를 받지 못했다.
가야금 12줄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애잔한 한이 녹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야금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한과 우리 민족의 애환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대가야의 웅비하는 힘과 문화·예술적인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악기라고 일컬어 지고 있다.

↑↑ 우륵 영정
ⓒ 고령군민신문

◇가야금 창제와 사회 통합
가야금은 6세기 전반 경 대가야의 가실왕(嘉悉王)이 당시에연주되던 전통악기를 토대로 중국의 악기를 참고하여 만든 현악기이다.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국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으며, 가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달라 소리음(聲音)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성열현(省熱縣) 출신의 악사(樂師)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금곡 12곡을 작곡하게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가야의 가실왕이 가야금을 창제하고, 음악을 통해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우륵으로하여금 12곡을 작곡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그 악기의 특징과 성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가야금의 창제는 가실왕의 명으로 우륵이 주도하고 가야금 곡도 작곡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가실왕이 대가야에 속한 여러 나라들의 말이 서로 달라 이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가야금곡을 작곡하게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대사회에서 음악을 통한 통치는 형정예악(刑政禮樂)으로 유학(儒學)에서 국가와 사회를 다스리는 가장 높은 단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가실왕과 우륵이 유교적인 예악(禮樂)사상을 통해 가야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개혁을 이루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가야금은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라는 의미와 함께 대가야의 국가통합이라는 화합과 개혁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가실왕이 통합하려고 했던 가야 지역은 어디였을까.
우륵이 작곡했다는 12금곡의 내용은 현재 전하지 않지만 곡명은 전해 온다.
그 곡명은 상가라도(上加羅都), 하 가 라도 (下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상기물(上奇勿), 하기물(下奇勿),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등이다.
이들 중 상가라도, 하가라도 등 10곡은 당시의 국명이나 지명에서 따온 것이고, 보기와 사자기 2곡은 불교와 관련된다고 한다.
즉 상가라도는 고령의 대가야, 하가라도는 김해의 금관가야, 사물은 사천, 하기물은 남원, 거열은 거창, 상기물은 임실 등등으로 비정된다.
이들 지역은 크게는 가야지역에 포함되어 있으며, 대가야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그렇게 되기를 기대했던 곳이었다.
따라서 가야금 12곡의 작곡은 이러한 지역들을 대가야에 포용해 '범대가야 연합(凡大加耶聯合)'을 추구했던 가실왕과 우륵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야금, 대가야의 우주관
가야금을 창제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다듬고, 실을 만들고, 또 정확한 크기로 자르는 등의 여러가지 기술이 필수적이다.
또 곡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륵은 대가야의 기술과 학문 등 문화적 능력을 종합해 가야금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가야금 역시 대가야의 국력이 종합해 이뤄진 문화적 산물이었다.
따라서 가야금은 대가야 사람들의 우주관과 시간관을 담고있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로 제작하고, 명주실로 12개의 현을 만든다.
그런데, 가야금은 그냥 만들어진 악기가 아니다.
그 속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세계관이 녹아들어가 있다.
가야금은 형태가 위판이 둥글고 아래판은 평평한데 이는 둥근 하늘과 평평한 땅을 본 딴 것이다.
또 아래 위의 사이가 비어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사이의 빈 공간을 의미한다.
이처럼 가야금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대가야 사람들의 우주관이 들어있다.
또 가야금의 현이 12개인 것은 1년 12달을 나타낸 것이고, 안족의 높이가 3치(三寸)인 것은 천·지·인을 상징한다.
즉 가야금 속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우주관과 시간관이 담겨 있다.
하늘과 땅, 그 사이에서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이루는 조화와 균형이 가야금의 선율이 되는셈이다.


◇우륵, 대가야서 신라로 망명…가야금 가락을 닮은 삶
우륵은 490년대 무렵 지금의 대가야의 성열현에서 태어났다.
당시 성열현은 정치·문화적으로 선진 지역이었으며, 대가야의 왕명이 직접 관철되는 곳이었다.
우륵은 성열현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면서 학문과 음악을 익혀 나갔다.
우륵이 20대 후반이 되던 520년대 전반 경 가실왕의 부름을 받고 대가야의 도성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당시, 대가야는 고대국가 단계로 발전하면서 오늘날 경남과 호남의 여수, 순천에 이르는 광범 위한 권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섬진강 유역과 남해안의 제해권을 둘러싼 백제와의 경쟁에서 점차 밀리는 추세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실왕은 우륵으로 하여금 가야금을 창제토록 하고, 가야금 12곡을 작곡하게 했다.
이는 유교적인 예악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범 대가야권 통합정책'이자, 정치 개혁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가실왕의 개혁 정치는 내부세력의 반발과 신라의 영토확장 욕구 등과 맞물려 점차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더하여 532년 금관가야의 멸망으로 가야를 지탱하던 대가야에 대한 신라의 공세가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더불어 대가야의 내부에서도 백제와 신라와의 외교적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를 두고, 친백제파와 친신라파로 분열돼 갔다.
아마도 우륵은 친신라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두 세력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친백제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되자 우륵은 가야금을 품에 안고 신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가 아마도 540년대 후반이었을 듯하다.
신라로 망명한 우륵은 당시 백제, 고구려, 신라의 대치가 극심했던 변방의 국경지대인 충주 지역으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우륵은 가야금으로 진흥왕의 관심을 받게 됐고, 진흥왕이 보낸 신라인 제자들에게 음악과 춤, 노래 등을 가르치게 된다.
그 뒤 대가야를 멸망시킨 진흥왕은 가야금을 신라의 대악으로 삼게 했다.
음악가로서의 우륵의 선택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하겠다.
아마도 우륵은 562년 대가야의 멸망을 직접 목격한 뒤 560년대 전반기에 생을 마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처럼 우륵은 대가야의 성열현 사람이었지만, 온전한 대가야인으로서 생을 마감하지 못했다.
또 정치·외교적으로 친신라 노선을 견지했기에 신라로의 망명을 선택했지만, 신라인으로 제대로 활동하지도 못했다.
이런 점에서 우륵은 대가야, 신라 양쪽 모두에 속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륵이 만든 가야금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대가야 사람으로서 끝내 이루지 못한 애틋한 무국의 꿈을 연주하고 있는듯하다.

↑↑ 우륵박물관 내부 전경
ⓒ 고령군민신문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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