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행정동우회 사무국장 맡아 활동 젖소목장 둘러보며 하루 시작 1주일 1~2회 사무실 출근 업무 골프 치며 동기회 등 모임 참석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2월 24일
↑↑ 이광호 전 성산부면장
ⓒ 고령군민신문
고령지역에서 34년간 공직생활을 하면서 시작도 끝도 새마을 운동과 함께한 새마을 운동의 산증인. 이광호(68) 전 성산부면장이 그 주인공이다. 고령군 행정동우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그를 지난 17일 오후 행정동우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요즘 근황과 건강관리는 매일 아침 5시30분이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젖소목장을 둘러보는 일로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30년전부터 시작한 목장은 어느새 규모가 늘어나 현재 젖소 60여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요즘은 날씨가 추워 바깥활동이 어렵고 농장일이 바빠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골프를 치며 건강을 다지고 있다. 군 제대 후 치기 시작한 골프가 당시만 해도 사치스런 운동이란 오명을 받았지만, 지난 2007년부터 생활체육종목으로 지정되면서 대중스포츠로 자리잡게 된 계기가 됐다.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행정동우회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보고, 남는 시간에는각종 모임활동과 지인들을 만나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나의 건강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에 나가 마음의 평안을 찾고, 농장관리를 하면서 적당한 노동과 보람을 느끼며 밝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공직생활을 새마을운동과 함께한 소감은 34년간 공직생활을 새마을운동과 함께했다. 공직생활을 돌아보면 지난 1970년 3월 공직생활의 출발은 새마을업무로 시작하면서 2004년 12월에 퇴임 시 새마을 주무관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새마을운동의 산증인이라고 불리어지는 이유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당시만 해도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희망이 없는 국가라고 낙인찍었다. 뚜렷한 지하자원이 없고 일자리가 없는 나라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새마을운동이 활기를 띄면서 ‘한강의 기적’을 만든 나라로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급기야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4마리의 용’의 하나로 꼽히게 됐다. 이 같은 번영의 중심에 새마을운동이 있었다는데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아직도 새마을운동의 박동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새벽종이 울렸네~새 아침이 밝았네’ 동사무소에서 찌익~찌익 잡소리 나는 확성기의 새마을노래 소리로 온 동네 사람들의 새벽잠을 깨우며 하루일과를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령군 발전을 위해 조언 한마디 고령군을 비롯해 인근 지역 성주·칠곡군 모두 대구광역시에 편입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재정자립도는 올라가고 지역의 숙원사업 또한 원만히 해결될 것으로 본다. 특히 도농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도 편입은 필요하다. 또 고령의 관문격인 성산면의 경우 사통팔달 교통은 발달해졌지만 농가들의 생산성은 현격히 떨어졌다. 그 요인으로는 수로가 막혔고 도로곳곳의 환한 불빛이 농작물의 생산성을 떨어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관단체장의 역량으로 지역 실정에 맞는 농지법 제도가 일부변경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잘 알다시피 지금의 농촌은 고령화에 접어든지 오래이다. 생산성 없는 농지 보존에 애로점이 많아 심각한 농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장, 반장 등의 마을지킴이 양성과 젊은 층이 귀농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축산 농가만 해도 그렇다. 대를 이어 축산을 이어갈 후계자가 없다. 몇십년후, 농촌을 지킬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염려스런 대목이다.
△지역 젊은 층 및 후배 공무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앞서 말했듯 공직생활의 시작과 끝을 새마을 사업으로 마무리했다. 낮에는 새마을 사업현장방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보고서 작성으로 정신없었다. 요즘은 컴퓨터라도 있어서 그나마 수월하지만 우리 때는 일일이 손으로 직접 작업을 했다.요즘 후배 공무원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직에 입문한 만큼 모두 박식하다. 후배 공무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마디 한다면 자신의 소신대로 업무에 임해졌으면 한다. 소신대로 일하는 것, 이게 바로 공무원의 사명감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