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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왕국’대가야, 고대 한반도의 한축 형성

고대한국은 ‘사국시대’였다

다산 곽촌·상곡리, 개진 구곡·반운리 구석기 유물 채집

백제와 교류 통해 선진문물 받아들여 철광 개발
농업 생산력 높이고 강력한 군사력 확보 가능해져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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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산동 고분군(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 고령군민신문


우리나라의 고대사회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눠 ‘삼국’시대로 분류하고 있다.
이에 오늘날 영남지역을 중심으로 호남지역 일부까지를 아우르면서 우리 고대문화의 한 축을 이뤘던 ‘가야’는 삼국에 비해 역사적 존재가치가 낮게 평가돼 왔다.
가야국은 ‘잊혀진 왕국’ ‘신비의 왕국’ 철의 왕국'등으로 불러지면서 홀대받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가야는 약 600년 동안이나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에 맞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신라에 통합된 것은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하기 100여 년전에 불과하다.
고대사를 삼국시대로 인식한다면 600여 년 동안 유지되면서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일궈왔던 고대 영·호남지역 사람들의 역사가 사라지는 결과가 된다.
우리 고대사를 삼국사가 아닌사국사로 새롭게 재조명하는 가야역사의 자리매김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야 사회를 주도했던 국가는 대략 서기 400년을 전후해 전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였고, 후기에는 고령을 중심으로 하는 대가야였다.
특히 대가야는 정치, 문화적으로 볼 때 가야의 최전성기를 이끌었으며, 순장문화와 가야금, 토기, 철기 등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해 우리 고대문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것으로 재평가 되고 있다.
제4의 고대국가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대가야의 역사를 조명해 본다.

△ 대가야의 여명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대가야의 고도인 고령 다산면 곽촌리와 상곡리, 개진면 구곡리와 반운리 등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낙동강을 비롯한 회천, 대가천, 안림천 등의 하천유역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고령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인 유물산포지와 지석묘, 암각화 등은 대개 하천을 끼고 있다.즉 고령읍내를 지나는 대가천과 회천유역, 안림천과 용소천유역 등 고령일대의 모든 수계에서 청동기 시대의 유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령지역은 ‘암각화
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많은 암각화가 발견되고 있다.
양전리와 안화리, 지산동 30호분 개석암각화를 비롯해 최근에는 운수면 봉평리에서도 암각화가 새롭게 확인돼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원 1세기경 삼한 소국의 하나인 변한의 반로국(半路國)이 형성되었다.
반로국은 개진면 반운리, 양전리 일대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그 세력은 그렇게 강성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대가야 성립과 발전
변한사회는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가야사회로 전환되어 갔다.
고령의 반로국도 마찬가지였다.
4세기 무렵에 대가야로 성장해 나간다.
이 시기의 가야국은 고령을 중심으로 현재의 합천군 야로면· 가야면·묘산면 일대와 고령군 우곡면 일대를 흡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와 함께 나라의 중심지도 개진면 양전리, 반운리 일대에서 주산 아래의 구릉지인 고령읍 연조리로 옮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비옥한 토지와 철기류를 이용한 농업생산력의 증대를 토대로 인근 지역을 통합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특히 대가야가 가야사회에 두각을 나타나게 된 것은 400년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 때문이었다.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금관 가야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약화되었으며, 고령지역의 대가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또 백제와의 교류관계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고, 철광이 개발되면서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강력한 군사력의 확보가 가능했다.
이처럼 대가야가 국력을 키우고 성장 발전하는데 있어 철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가야의 주요 철산지는 합천의 야로와 고령의 쌍림 지역 등지로 추정된다.
특히 야로의 철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나라에 세금으로 바쳤을 만큼 명맥이 이어졌고 품질이 좋았다.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을 잘 보여주는 것이 고령의 지산리고분군이다.
지산리고분군은 주산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 위에 대가야의 왕도였던 고령읍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웅장하게 조성된 대형봉토분 5기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고분 200여 기가 분포하고 있다.
발굴조사 결과 지산동고분군에서는 대가야양식으로 불리는 여러 종류의 토기류와 철기류, 마구류, 금동관과 관장식, 금은 장신구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되었다.
뒤이어 지산동 74호분과 지산동 30호분이 조영되었다.
특히 지산동 30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순장석곽에서 8세 정도의 어린아이가 같이 묻혀 있었다.
이 시기 대가야의 최고지배자는 금동관을 착장한 사람을 순장시킬 만큼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지산동 3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무구류는 이 시기 초월적인 존재인 왕의 등장을 짐작케 한다.
왕의 존재는 이 후 거대한 고총고분인 지산동 44·45호분과 같은 대규모의 순장묘를 조성할 수 있었고 대가야의 최전성기를 구가하였다.
479년 대가야의 하지왕(荷知王)은 중국 남제(南齊)에 사신을 파견해 보국장군본국왕(輔國將軍本國王)으로 제수 받았으며, 충남대학교박물관 소장의 대왕명장경호를 통해 '대왕(大王)'이라는 왕호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5세기 초에 조성된 지산동73·75호분과 뒤이어 만들어지는 지산동 30·32호분이 축조될 무렵이 되면 대가야는 이전과는 다른 정치적인 발전을 이뤘으며, 최고 지배자는 대왕을 칭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대가야는 5세기대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전성기 대가야의 왕은 대왕으로 불리며 가야 여러 세력들을 이끌면서 백제, 신라와 비슷한 고대국가 단계로까지 발전해 나갔다.
합천, 거창, 함양, 남원, 장수, 순천 등지에 분포하고 있는 대가야양식 묘제를 지닌 고분군들의 존재는 5세기대 이후 대가야가 고령지역을 벗어나 외부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급격하게 성장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5세기대 이후 소위 대가야식묘제와 토기들이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5세기 중엽이후가 되면 반계제를 지나 거창, 함양을 거쳐 전북 남원과 전남 순천에까지 그 세력권이 미치게 되었다.
대가야의 최고 통치자는 왕을 칭하게 되면서 이전 단계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지역에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새로운 중앙통치체제를 구축해 편입된 지역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 편제하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주목되는 것이 합천저포리에서 출토된 ‘하부사리리(下部思利利)’란 명문의 토기와대왕(大王)이 새겨진 장경호이다.
이를 통해 대가야가 최소한 상부와 하부를 근간으로 영역국가를 지향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으며, 왕은 스스로 대왕을 자칭했음을 보여준다.

△ 대가야의 멸망
대가야는 5세기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고 6세기 이후 고령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백두대간을 넘어 전라도일대까지, 남쪽으로는 합천, 의령을 거쳐 진주, 고성의 남해안지역까지, 서남쪽으로는 섬진강 하구의 하동, 순천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최대 판도를 확보했다.
그러나 법흥왕대 이후 지속적인 신라의 낙동강유역 진출과 529년 신라와의 결혼동맹 파정은 대가야가 쇠퇴와 멸망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554년(진흥왕 15) 신라와 백제간의 한강유역과 가야지역에 대한 패권을 둘러싼 관산성 전투에서 백제 성왕과 가야의 연합군이 패배함으로써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그후 562년(진흥왕 23) 이사부(異斯夫)와 사다함(斯多含)이 이끄는 신라 기병대의 기습공격으로 대가야는 멸망한다.
이처럼 이진아시왕에서 도설지왕에 이르는 16대 520년간 유지되었던 대가야는 6세기경의 국제정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 대가야문화권 범위
ⓒ 고령군민신문
↑↑ 대가야 역사
ⓒ 고령군민신문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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