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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됨박으로 왜군을 물리치다

이야기로 꾸민 우리 고장 민담·전설<1>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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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세 아동문학가
ⓒ 고령군민신문

<임진왜란 때 우리 고령지방에서 활약한 이름 난 의병장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조선 3대 의병장으로 손꼽히던 송암 김면 선생입니다. 그의 부인 또한 선견지명을 가진 분으로서, 이 이야기는 김면 선생의 부인 전주 이씨에 대한 것입니다.>

부인은 본래 타고난 성품이 어질고 정숙한 분이었습니다.

또한 앞일을 내다보는 지혜가 남달라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수 년 전에 벌써 일본이 침략해 올 것을 미리 짐작하였습니다.

이른 봄이 되자 부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모든 논밭에 박만을 심도록 하였습니다.

식량으로 쓸 곡식은 심지 않고 박만 심으라는 부인의 말에 궁금하고 이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평소 부인을 하늘같이 믿고 따랐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가을이 되자 논밭과 산비탈에는 온통 보름달을 앉혀놓은 것 같은 박 천지가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잘 영근 박을 모두 따서 집에 들였습니다.

집집마다 박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부인은 박을 모두 따 들이자 마을 사람들에게 다시 이렇게 일렀습니다.

“여러분, 박을 쪼개지 말고 속을 모두 파내어 됨박을 만들고 송진을 진하게 칠하도록 하세요.”

됨박은 박을 반으로 쪼개지 않고 둥근 모양 그대로 꼭지 근처에 구멍만 뚫고는 그 속을 파낸 바가지를 일컫는 뒤웅박의 방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왜 그렇게 하라고 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도 역시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됨박에다 송진을 진하게 바르니 새카만 큰 공처럼 되었습니다.

부인은 이제 집집마다 있는 무쇠들을 모두 한곳에 모으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마을의 힘센 남자들을 불러 이렇게 시켰습니다.

“자, 이 무쇠들을 녹여서 됨박처럼 만들고 검게 칠하도록 하세요.”

마을 사람들은 부인이 시키는 일이 점점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묻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박으로 만든 것과 무쇠로 만든 것을 한데 섞어 두니 어느 것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무쇠로 만든 됨박은 부인이 따로 두었습니다.

박으로 만든 됨박은 마을 사람들에게 가족 수대로 나누어 주면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여러분, 이 됨박을 내가 달리 이를 때까지 꼭 집안에 잘 간수하도록 하세요.”

그 이듬해인 임진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미처 전쟁준비를 하지 못한 조선은 왜적이 짓밟고 지나가는 곳마다 폐허로 변했습니다.

드디어 부인의 마을인 양전동 가까이까지 왜적이 쳐들어 왔습니다.

부인은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목숨이 매우 위태로운 지경에 놓였습니다.

왜적들이 가는 곳마다 우리 백성들이 힘없이 쓰러지니 이 마을을 떠난들 살길이 없습니다.
그러니 한 사람도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부인은 불안에 떨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결연한 의지로 외쳤습니다.

그러고는 감추어 둔 무쇠 됨박을 왜적이 들어올 만한 마을 주위의 길가에다 늘어놓았습니다.

며칠 뒤 왜적이 양전동을 지나다가 수백 호가 되는 큰 마을이라(정유재란 때 왜적이 이 양전동을 불태우기 전에는 수백 호 되는 마을이었다고 전해 짐) 들어가 습격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을로 들어가는 길가에 늘어놓은 수많은 무쇠 됨박을 보고는 이상하게 여겨 들어보려다가 너무 무거워 감히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때를 놓칠세라 양전동민 남녀노소는 일제히 고함을 치면서 왜적이 들어 본 무쇠 됨박과 같은 것을 한손으로 들고 북소리를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사실은 그 됨박은 부인이 시키는 대로 박으로 만든 가벼운 것이었다.

그러나 왜적들은 그 같은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였습니다.

“아이쿠! 이곳에는 모두 힘센 장사들만 사는 곳이니 마을에 들어갔다가는 한사람도 살아남기 어렵겠구나. 어서 빨리 도망가자.”

왜적들은 그렇게 외치고는 쏜살같이 도망쳤습니다.

부인의 앞일을 내다보는 지혜로 그 당시는 큰 화를 면했습니다.

그러나 물러갔던 왜군이 다시 쳐들어 온 정유재란 때에 왜적들은 의병을 일으킨 송암 김면 선생과 부인의 속임수에 대한 보복으로 다시 양전동에 쳐들어 왔습니다.

마을에 들어 선 왜적들은 온 마을에 불을 질러 다 태워버렸습니다.

그 당시 고령보다 호수가 더 많았던 양전 마을은 모두 불타버리고 오늘날처럼 작은 마을로 변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88. 고령문화원).「송암 선생 부인과 박」(김우열)을 바탕으로 꾸민 이야기임.



<연재하면서…>
고령은 520년 간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의 꽃을 피웠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고장이다.

많은 민담·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지난 날 대가야의 얼을 되살리고 오늘날 고령의 숨결을 함께 느끼며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고장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주고자 아동문학가 권영세 씨의 집필로‘이야기로 꾸민 우리 고장 민담·전설’을 연재한다.

아동문학가 권영세씨는 고령군 성산면 기산리 출신으로 1980년 ‘창주문학상’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현재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인협회 등의 회원이며, 대구아동문학회의 회장으로 대한민국문학상, 대구시문화상(문학부문), 대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동시집‘탱자나무와 굴뚝새’외 5권, 산문집 ‘덩굴식물 만데빌라에게 배우다’ 등이 있다.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4년 05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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