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겨서 죄송합니다.” 90년대 한 코미디언이 유행시킨 말이기도 하지만, 가뭄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올해 여름, 논쟁의 중심에 서있는 한 생물체를 둘러싼 변명이기도 하다.
‘못 생겨서 죄송한’ 이 생물체는 사실 필자가 보아도 도저히 정이가게 생기지 않은 생물체임은 분명하다.
이는 낯설고 이상하게 생긴 생물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두려움이라 생각하나, 문제는 이러한 낯선 생물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한 언론보도와 SNS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 보다는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접근으로 외형자체 모습보다 더 못생긴 여론을 만들어 가고 있어 마음을 더욱 죄송스럽게 한다.
큰빗이끼벌레는 사실 언제부터 우리와 함께 지내왔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1990년대 중반 언론에 등장한 적은 있었지만 체계적인 연구를 통한 환경오염과의 상관관계가 밝혀진 것도 없다.
다만 이상고온으로 태형동물 휴면아의 발아 시기와 속도가 빨라지고, 가뭄으로 물의 정체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동성이 없는 이 동물들이 쉽게 수면 밖으로 노출되어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하나의 ‘현상’에 대하여 사실은 사라지고 정치적인 이념이 덧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큰빗이끼벌레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만 논쟁의 과정에 과학적인 사실과 논리적인 접근은 실종되고, 4대강 사업의 실패 또는 지난 정부의 잘못만이 부각되고 있으며, 큰빗이끼벌레의 기괴한 생김새는 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모든 사회적 이슈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순식간에 공유되는 사회에서 대중들은 정보력을 가진 언론과 이를 확산시키는 SNS에 의존하고 있다.
참과 거짓이 혼재된 무수한 정보의 시대에 올바른 정보의 접근과 전파가 필요하나, 이성적인 판단 대신 같은 집단으로서의 확인과 믿음, 그리고 의존성은 비합리적인 인간의 집단행동으로서의 루머를 빠른 속도로 확산시킬 뿐이다.
이미 대중화된 SNS의 활약으로 새로운 소식을 옮기는데 비용이 거의 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이런 루머를 양산하는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비용이 있다. 바로 불신에 대한 비용이다.
불신에 대한 비용은 2008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과 만나 신뢰 있는 정보인양 값싸게 유통된 결과이다.
정부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라는 긍정적 평가와는 별도로 시위대와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과, 전국 주요 시가지의 교통 혼잡, 인근 상가의 피해 등 온 국민이 사회적 혼란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큰 틀에서 보면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논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적 불확실성과 불만이 ‘못생긴’ 큰빗이끼벌레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만나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점이다.
못생긴 이 생물체가 정말 죄송한지 아닌지는 전문가들의 철저한 연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 강토에서 살아가야하고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에게 죄송스럽지 않도록 막연한 불신을 걷어내고 순수한 마음으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