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마등(龍馬嶝)의 눈물
이야기로 꾸민 우리 고장 민담·전설<21>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 입력 : 2015년 02월 16일
|  | | | ↑↑ 권영세(아동문학가) | | ⓒ 고령군민신문 | |
고령군 운수면 팔산리는 마을 이름 그대로 여덟 개의 산봉우리로 둘러 싸여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용마상 모습을 한 ‘용마등(龍馬嶝)’이란 봉우리가 있습니다.
그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는 자연현상으로는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자리인데도 얕은 계곡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곳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조 중엽 이 마을에는 박부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아버지 대까지는 생활이 별로 넉넉하지 못해 농사를 지어 겨우 살아가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선친의 묘를 용마등에 쓴 후부터 재물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보는 마을 사람들은 명당자리에 묘를 써서 그렇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박부자가 묘를 쓴지 10년이 넘었을 때는 재산이 엄청나게 불어 인근 고을에까지 그 이름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평소 성격이 원만하지 못한데다가 워낙 인색한 박부자는 재산이 산더미처럼 불어났지만 이웃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기에 더욱 혈안이 되었습니다.
거기다 불어난 재물로 사들인 자기 논밭에 소작농을 하는 사람들로부터 세를 과다하게 받아내는 몰염치한 행동까지 스스럼없이 했습니다.
하루는 남루한 승복을 걸친 도승이 박부자의 집 앞을 지나가다가 시주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절을 당하고 쫓겨나 골목을 나오는데 마을 사람들이 군데군데 모여 수군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님의 시주까지도 외면하다니 정말 너무하구먼.”
“그러게 말일세. 저런 자는 전과 같이 가난뱅이가 되어야 해.”
“아무렴. 다시 가난해져 봐야 겸손하게 사람다운 구실을 하지. 부자가 되니 안하무인이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박부자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마치 박부자의 악행이 도승의 귀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듯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박부자의 좋지 못한 행동을 전해들은 도승은 다시 박부자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장, 내 말을 한번 들어 보시오.”
“아니, 나는 시주할 마음이 없다고 하는데 왜 또 왔소.”
박부자는 험한 얼굴을 하고는 도승을 쫓아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도승은 박부자가 부리는 일꾼들에게 등을 떠밀려 집 밖으로 나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당신 선친의 묘를 보았는데 머지않아 이 댁에 큰 화가 미칠 것 같소.”
“아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박부자는 한껏 기세를 낮추고 고분고분한 말투로 도승의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아, 그게 말이요. 아시다 시피 용마는 기운을 가장 세게 쓰는 곳이 머리가 아니요. 그런데 선친의 묘를 말머리에 써서 용마가 제대로 기운을 발휘하지 못하게 눌러 놓았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도승의 말은 들은 박부자는 두 손을 모으며 더욱 자세를 낮추어 간청하듯 말하였습니다.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스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으니 제발 그 방도를 좀 알려 주십시오.”
“그야 간단하지요. 선친의 묘를 말의 머리에서 사람을 태우는 등 부분으로 옮기고 숨을 크게 쉴 수 있도록 숨구멍을 하나 파주기만 하면 그 기운이 자손만대에 이를 것이외다.”
도승은 말을 마치기 바쁘게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박부자는 자기가 푸대접한 도승의 말이 크게 믿어지지 않았으나 조금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잘 된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묘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박부자는 이내 도승이 시키는 대로 묘를 말의 등 부분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머리 부분에는 숨구멍을 크게 내기 시작했습니다.
욕심이 많은 박부자인지라 숨구멍을 크게 내면 낼수록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며칠에 걸려 작은 숨구멍이 아닌 큰 계곡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작업이 거의 끝날 무렵 갑자기 땅속에서 하얀 학 두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라 멀리 사라졌습니다.
박부자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박부자의 가세는 차츰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박부자는 병마저 걸려 자리에 눕더니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부자로 살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고 오히려 힘들게 괴롭힌 지난날의 잘못을 후회했지만 결국은 죽음으로 끝나버렸습니다.
지금도 용마등 봉우리의 한가운데가 움푹 파여져 있어 비만 오면 고였던 빗물이 용마의 눈물인양 흘러내리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 이 글은 《우리 지방의 민담․전설 및 지명 유래》(88·고령·문화원).「박부자와 용마등(龍馬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임.· |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  입력 : 2015년 0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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