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68호입력 : 2016년 04월 05일
장경오훼(長頸烏喙)
김종필 전 총리가 자신이 직접 쓴 휘호에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민주자유당 대표를 박차고 나오면서 “장경오훼”라고 썼는데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난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영화는 같이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춘래불사춘, 줄탁동기, 충청도 핫바지, 등 여러 가지 정치용어들이 많은데 요즘 들어 다시 사회에 풍자되고 있다.
월나라 구천은 오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은 범려였다. 범려는 20년 동안 구천을 보필하면서 그를 패자(覇者)로 만들었다. 그 공로로 범려는 상장군이 되었지만 구천은 어려움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함께할 인물이 못 된다는 것을 꿰뚫어 보고 구천에게 작별을 고하고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
제나라에서 그는 자신과 절친했던 월나라의 대부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썼다. 하늘에 새가 다하면 좋은 활도 창고에 넣어 두게 되고,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삶겨 죽으며, 적국이 망하면 모사(謀士)가 죽는 법이오. 게다가 월왕 구천의 상은 목이길고 입은 새부리처럼 생겼는데 이런 인물은 어려움은 같이할 수 있으나 즐거움은 함께 누릴 수 없소. 그대는 어째서 떠나지 않는 것이오.
문종은 편지를 본 후 병을 핑계로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문종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구천에게 일러바쳤다. 월왕 구천이 문종에게 칼을 주며 말했다. “그대가 과인에게 오나라를 치는 일곱 가지 술책을 가르쳐 주어 과인이 그중에 셋을 써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나머지 네 가지가 그대에게 있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선왕을 따라 시험해보라”하니 종은 자살했다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패자로 유명했던 월왕 구천은 와신상담 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절치부심 자신의 야망을 위해 몸을 바쳤던 사람이다. 월왕 구천의 책사는 그 유명한 범려다. 중국에서는 재물의 신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오왕 합려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구천을 다시 일으켜 결국 오왕 합려를 죽이게 만든 천하의 지략가다. 범려는 전쟁이 끝나고 승리했을 때 구천의 관상을 보며 소스라치며 놀라고 만다.구천의 관상은 장경오훼의 관상이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관상이 나타나자 범려는 미련 없이 구천을 떠난 것이다. 한나라의 한신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장수였지만 자신이 황제로 만들어준 한고조 유방에게 철저히 배신을 당했다. 꼭 관상 따라 성품이 정해졌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장경오훼의 관상보다 더 무서운 것이 후덕한 관상 뒤에 숨은 표독한 유방 같은 성품이다.
고령경찰서 민원실장 김년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68호입력 : 2016년 04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