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0호입력 : 2016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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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닮은 보리 꽃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정원을 바라다보며, 잎도 나기 전에 부지런을 피우며 멋스럽게들 피어있는 꽃들이 너무나 예뻐서 기쁜 마음으로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있다. 꽃이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는 식물의 줄기나 가지에 붙어서 열매를 맺기 전에 피어 아름다움을 보이는 부분, 혹 아름다운 여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筆者는 꽃을 ‘어머니 혹 희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꽃잎들은 나뭇잎들 보다 그 조직이 연하고 약하다. 또한 태양광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니 성장을 하거나 긴 시간을 살아가지 못한다.
오직 열매 탄생의 배지 임무로서 최대한 많은 벌 나비들의 방문을 받아 가장 건강하고 강한 열매를 생산하여 종족 보존의 주춧돌이 되는 것이, 자녀들의 양육에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붇고 정작 자신의 노후 대책이 미흡하여 팔순의 노구로 일터에서 노동을 하고 계시는 우리네 어머니를 보는듯하여 마음이 맹해진다.
구경꾼은 ‘아! 예쁘다.’하고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꽃 자신의 사명감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한 초조한 시간에 오늘처럼 빗방울이 속절없이 내리는 날은 저 꽃들이 얼마나 힘이 들까? 해가 저물어 더 이상 햇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황혼(黃昏)에는 아쉬운 마음이야 있지만, 그래도 내일 아침에 날이 밝아 못다 채운 잉태의 꿈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라도 있었겠지만. 하늘의 축복처럼 내려주던 햇살조차 양껏 받지 못하고, 바람 불어 비올 때 당신의 뜻과 상관없이 꽃의 하늘을 닫고 추위에 떤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의 질곡세월이었을까?
병아리 닮은 노란색 옷을 입은 유치원 아동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한껏 놀고 갔으면 좋을 것 같은 개나리 울타리 사이로 붉은 빛이 오히려 정겹게 안겨오는 연산홍 꽃은 오히려 즐기는 듯 고개를 숙이지 않고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다. 아니 하늘을 마시고 있다.
시골 장터 구경거리인 약장수의 ‘차력 쇼’를 볼 양으로 우람한 장정들 틈에 끼어 고개만 빼꼼이 들어다보던 아이처럼, 연산홍 무더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줏빛 제비꽃 한 포기를 보통 사람들은 눈 여겨 사랑의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
필자(筆者)는 어릴 때, 눈이 아프도록 어머님의 젖은 무명 적삼 소매 끝자락에서 아른거리던 보리포기들을 잊어 본적이 없는데 오늘 아침에 제비꽃을 안고 있는 보리꽃을 보았다. 어머님 닮은 꽃. 겨울 내내 뿌리는 살아있지만 잎은 죽은 듯이 땅에 붙어있던 보리가 봄이 되어도 온갖 잡초들의 괴롭힘을 받을 때, 날이 약간 문드러진 호미 한 자루로 가꾸시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경쟁력이 부족하다하여 계약 재배되고 있는 맥주 재료의 보리는 간혹 볼 수 있지만 어머님의 예전 보리꽃은 볼 수가 없었다. 수년전에 지리산 발치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발견하고 얻어다 매년 꽃처럼 가꾸고 있는 토종 보리 포기는 키도 작고 이파리도 가늘어서 보는 눈을 아프게 하기 일쑤다.
이삭도 아주 작지만 어릴 때의 동심을 엄청 크게 전해 줄 듯하여, 매년 두어 포기 되도록 심어 보는데 오늘 아침에 문득 나를 원망하는 듯한 제비꽃 옆의 보리를 보았다. 아직은 하늘 소명의 준비단계인지 꽃잎색이나 이삭 꽃 색이 모두 짙은 초록색으로,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님의 땀을 닦으시면서 길게 내시는 한숨에 흔들리던 초록색 보리 모습을 오늘 아침에 또 다시 보게 된 것이다.
언젠가 어머님께서 진달래꽃잎을 따 주시면서 “참꽃은 먹을 수 있단다.”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내 딴에 대견한 일이라도 하는 양으로 붉은 꽃을 꺾어서 보리밭을 매는 어머님께 드렸는데 아주 곱게 웃으시면서 “고맙지만 그것은 개꽃이구나.” 하시면서 보리 이파리로 불어 주시던 피리소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한 갑자(甲子)를 내다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껏 그렇게 마음에 기쁨을 주는 연주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주 들었던 교회 반주나 비싼 돈 내고 들었던 오케스트라 연주도 심지어는 나의 결혼식 행진곡마저도 내 마음에는 어머님의 보리 이파리 연주를 능가하지 못 할 거라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뭇 꽃들이 비가 오는 길목에서 ‘하늘이 언제 개일까?’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지만, 보리 아니 보리꽃은, 보리밭 매면서 비 맞은 얼굴처럼 흘리시던 어머님의 땀을 닮은 빗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명을 완수 한다. 어머님 닮은 보리꽃은 오늘도.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0호입력 : 2016년 04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