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2호입력 : 2016년 05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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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효자일까?
효자는 효를 실천하는 사람일 것이다. 세계적인 현자 공자(孔子)가 그의 제자 증자에게 효도에 대하여 논(論)한 것을, 후에 증자의 제자들이 모아서 기록한 책이 효경(孝經)인데, 孔子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며, 예로서 제사를 받들 것을 설(設)하였고, 그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제시하여 이것을 확고히 정착시켰다.
이것에 孟子(맹자)께서 자식의 부모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 부분을 더하였고, 한(漢)대에 와서 효를 정리한 책이 효경(孝經)인 것이다. 한국에서의 효사상의 정리는 고구려의 태학(太學)이나 신라의 국학(國學)에서 교육 하였고, 삼국사기에 효녀 지은(知恩), 향덕(向德), 설씨녀(薛氏女) 편에서 확인 할 수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논어나 효경을 기초로 한 유교적 효사상이 지식인들의 기본 교육이 되었다. 고려 말기 권부(權溥)의 효행록(孝行錄), 조선시대의 효행록(孝行錄), 특히 세종 13년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효자도(孝子圖)는 효행담(孝行譚)을 집대성한 것이다.
동양권에서는 이토록 오랫동안 효 사상을 중시 여겨 왔는데, 마침 ‘가정의 달’을 맞아 이론보다 실질적이며 특히나 요즘 젊은이들이 취업난에 힘들어하니 筆者는 해학적으로 孝를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우스개 소리로, 박씨 문중을 배경으로 하는 흥부전에 나오는 두 형제 중에 누가 더 효자일까? 필자(筆者)가 어릴 때는 놀부는 나쁜 사람이었고 흥부는 착하고 바람직한 사람이었다. 절대적인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시대였고, 1차 산업인 농경사회이다 보니 씨족 단위의 집성촌을 형성하여 노동력을 소위 ‘품앗이’라는 형태로 활용하던 시절에는 ‘장자의 절대 우선권’이 통용되던 정신문화가 동학혁명을 비롯한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차남들의 인권신장을 풍자적으로 나타낸 이야기라 추측해 본다.
언제인가 젊은이들의 정신세계를 맛볼 양으로 담소(談笑)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놀부는 가족의 의식주 정도는 해결하는 사람이지만, 흥부는 무능하고 책임감 없이 자식을 많이 낳아서 온 가족이 불쌍하게 살아야 했으니 천하에 둘도 없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등소평이 말한 “고양이는 검으나 희나 쥐만 잘 잡으면 된다.”란 말을 응용하면서, 열매가 신앙심을 평가한다는 성경 구절까지 들먹이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사회 지도자들이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요양원에서 어르신들께 “착한 아들은 어떤 사람입니까?”를 물어 보니, 안 아프고 자라주고, 공부 잘하다가 재수생활 없이 대학가고, 군대 가서 안 다치고 돌아오고, 취직 잘하고 시집·장가 쉽게 가서 아들·딸 낳고 빚 없이 사는 아들이라고 말씀들을 하셨다. 누구나 이 정도는 누리며 살 수 있는 쉬운 이야기 같은데, 따지고 보면 무척 어려운 요구임을 생각하니 착한 아들 딸 되기가 무척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다시 “보통 아들은 누굽니까?” 하니 “빚 갚아 달라고 숨어들지 않고, 흔한 이혼을 하더라도 빨리 재혼하여 어미 밥 먹지 않는 정도면 된다.”고 하셨다. 이분은 이렇게 마음에 있는 고통을 훌훌 떨치시지만, 어머님은 칠 남매 눈치 보느라고 말씀도 못하시고 무거운 가슴으로 팔십 넘어 구십 고갯길을 힘들게 가시고 있을 듯하여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 진다.
다시 앞서 공자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공자는 칠십대 아버지와 십대의 어머니 사이에서 집도 없이 천하고 가난하게 요즘 말로 ‘흙 수저’로 태어났었다. 공자의 직업은 유(儒)였다. 당시의 ‘유’는 ‘선비’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직업이었고, 노동의 대가가 지불되지 않아서 매장한 무덤을 도굴하여야만 생계가 유지 될 정도의 비천한 직업이었다.(신영복의 공자의 생애, 담론)
그 흙 수저 공자가 어느 날, 죽은 사람에게도 예의를 다하자고 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사람들에게 우습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대를 형성하여 무덤을 도굴하는 실례가 줄어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공자에게 매장을 부탁하게 되어 유(儒)는 군자, 선비, 스승 등으로 승격되어 존귀한 직업이 되었던 것이다. ‘흙 수저’가 이천 오백년을 지나오면서 인문정신의 ‘금 수저’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면서 ‘효는 무엇일까?’를 재정리 하고자 한다.
효는 형태나 규격이 있는 행위의 모습도 아니고, 객관적인 착한 행위도 아니며, 과거에 집착할 요식 행위도 아니며,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기본적인 모습을 행함에 있어서 본인이나 주위사람이 공히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하고 싶다. 서양에서 온 선교사가 소개한 패랭이꽃(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주어야만 어버이날 행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 할 중요한 ‘무엇’을 찾아봄이 중요할 것이다.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2호입력 : 2016년 05월 0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