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3호입력 : 2016년 0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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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미안합니다
실수를 하면 사과를 한다.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며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지만,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미안합니다.”란 한마디 말을 못한 고백을 하고자 한다. ‘가정의 달’인 오늘 아침에, 직접 사과를 못 드리지만 지상(紙上)에나마 공개적으로 용서를 바라는 사과 말씀을 올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5월에 도양읍 소록리 1번지에 있는 그곳, 사랑이 항상 넘쳐흐르고 정말 인간의 정이 솟구치는 그곳, 하늘의 크신 분에게 인정받을 일을 하는 그곳에 기념일이 있단다. 그래서 젊은 처녀의 나이에 그곳으로 와서 환우(患憂)를 40여년 돌보다 퇴임하셨던 이모님 같은 [마리안느 수녀] 천사가 특별히 초청받아 방문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퇴임하고 가셨다가 십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기념행사 귀빈으로 초청되어 소록도를 방문하시었다. 주체 측에서 제공하는 깨끗하고 안락한 숙소를 마다하고 당신들께서 예전에 사용하시던 숙소에서 환우들과 동고동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진정한 천사의 이야기를 접한 계기로 못 다한 ‘미안하단 말’을 고백하고자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온 3마(마리안느, 마가렛, 마라리아)의 공덕비가 세워져있는 옆의 환우 병동(病棟) 앞에서 비겁하게 돌아서는 실수를 한 것이 1987년의 봄이었다. 의성에서 도양읍을 방문 위문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필자도 당시 서른 살을 겨우 시작한 나이였지만 용기를 내서 목사님과 장로·권사님들 틈에 끼어서였다.
당시는 녹도항에서 배를 타고 소록도를 찾았지만, 지금은 소록대교(2009년 개통)를 이용하여 여행을 할 수 있다 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닙니다. 다만 문둥이 새끼일 뿐입니다.’라고 절규한 한하운 시인의 노래비와 ‘소록도의 슈바이처’ [하나이젠키치]원장의 칭덕비를 안고 있는 4.4 ㎢ 정도의 작은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을 닮아서 小鹿島(소록도)라고 한단다.
안내자의 설명을 듣고 잠시 섬 전체를 둘러보는 관광을 할 때는 소나무 숲과 갯바위 등이 무척 아름다웠다. 筆者의 짧은 생각에, 이렇게 아름답고 섬 이름도 鹿(록)이니 사슴들이 이곳에 살면 한센병환우들에게 정말 좋겠다고 기도했었는데,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기도 5년 후에 서울에 사는 독지가(篤志家) 白선생이 사슴3마리를 기증하여 키운 것이 지금은 넘쳐 나고 있단다.
역시 꿈(祈禱:기도)는 반듯이 이루어지나 보다. 이루어 주신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설레는 마음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와중에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다. 한센병은 비말감염이나 음식물을 통하여서는 감염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선입감인지 아니면 곳곳에서 풍기는 소독약 냄새 때문인지 모두가 머뭇머뭇하고 있을 때 안내자가 재차 식사를 권하여도 모두가 먹는 흉내만 내고 있었다.
환우들의 병동(病棟)에서 하는 ‘침상 봉사’는 원하는 사람만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필자(筆者)는 젊었고 또 남자로서 그곳까지 가서 그냥 돌아가면 후회할 것 같아서 많은 시간 동안 갈등을 하였지만 결국 용기를 낼 수 없어 침상 봉사는 하지 못하였다.
깨끗하고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던 성당에서, 간단한 예배와 오락 시간이 있었는데 그렇게 열성을 다하여 드리는 간절함은 마주한 것이 흔치 않았다. 벌써 수십 년을 찬양찬송을 하고 들어 왔으며, 사회음악도 수많은 장르를 넘나들며 듣고 부르고 했지만 그때처럼 혼신의 노래 부름을 감동으로 받아들인 때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손으로 치는 박수소리는 다양했다. 책상을 치기도하고, 벽을 두드리기도 하고, 손이 아픈지 일어서서 발로 장단을 맞추며 구르기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마저도 못하는 친구들은 벙거지 모자를 쓴 머리를 전후좌우로 흔들면서 박수를 대신하고 있었다.
얼굴은 근육의 경련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기쁨과 환희로 충만한 천국을 그곳에서 느끼고 온 후부터, 아직까지 필자(筆者)는 겉모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충만한 아름다움이 진정한 사람의 행복이라고 믿고 생활하고 있다.
낡은 차를 정기검사하려 가면 난색을 표하며 ‘중고라도 바꾸죠?’하는 소리를 수없이 들어도 참을 수 있었고, 때때로 저 높은 그분을 생각하며 나보다 추운 누눈가를 생각하는 버릇이 있으니, 친구가 초청하는 잔치에 바자회에서 구입한 헌옷을 입고 가면서도 추위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지만, 그때 ‘침상 봉사’를 하지 못했음을 항상 미안해하고 있다.
군(軍)시절 의무병으로서, 보건기관에서, 사회복지사나 생활지도교사로서 양노원에서 근무하며, 요양원에서 어른들의 대소변을 벗하면서도 저 높은 그분을 생각하고 살아 왔지만, 그때 그곳에서 침상봉사를 하지 못하고 돌아 온 가슴 눌림은 항상 짐이었다. 마리안느 수녀님의 안녕을 기도하면서 가슴의 짐이 조금 덜어지길 기도 할 수밖에.
수필가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3호입력 : 2016년 05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