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4호입력 : 2016년 0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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놋재떨이 소리
요즘 할아버지는 손자의 친구 되기도 벅차다. 세계 어느 곳 보다 높은 교육열로 우리네 어린이들은 공교육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초등교육을 시작하기도 전에 후발국들의 중·고등 수준을 능가하는 지식을 얻고 있다는 소식을 웃어야 할지, 아니면 측은이 생각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아니 할 말로, 앞으로의 세상은 인조인간들이 많은 부분을 만족 할 수 있을 만큼 인간 노력을 대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공부들을 많이 하여야 할까?
공영방송인 KBS의 중요부분인 저녁9시 뉴스를 진행하였던 신은경 아나운스(announcer)가 아침 일찍 진행하는 토크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롤 모델(role model)을 회상하면서 정작 자신은 공부를 마음껏 충분히 못 했노라고 회상하는 장면을 보면서 筆者는 정말 멘붕이 되었다.
소위 일류고등교육을 접하고 공영방송국에 우수한 실력으로 취업하여 중요영역에서 많은 국민의 선망의 대상으로 추앙 받던 사람이고 아직 반생애도 덜 된 나이에 독립된 전문 분야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완벽할 정도의 갖춘 사람과 보금자리를 꾸리고 있는 사람이 하는 말로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너무나 어색하였다. 교과서만 공부했다는 예비고사 만점자처럼. 정의로운 사회질서가 무시당하던 일제강점기나 전쟁을 격어면서 천부적인 인권평등사상이 존립은 하였으나 권력이나 재력 앞에서 빛을 잃었던 시기를 이해하고, 사회 정의가 무엇인가를 깨달아 가면서 정해진 규칙에 의한 공익 창출을 존경하는 것이 요즘 세태 아닌가?
조선조의 과학자 장영실이 크게 칭찬 받을 업적을 남기고도 권력에 의하여 제 값의 평가를 받지 못 하였던 것처럼, 현시대에도 저토록 처절하게 지식 습득에 매달려야 하는 숨겨진 검은 그림자 같은 갑(甲)질의 무엇이 아직도 판친다고 생각하니 이 세상이 너무 슬프다.
그러나 이애란 가수는 구십세가 되어도 좋은 날 잡아서 그곳으로 갈 것이니 저승사자를 보고 ‘재촉하지 말라.’하며 이 세상이 살만하고 즐거운 곳이라 노래하지 않는가? 그래도 이승에 살고 있으려면 누구나 [주민세] 납부 하듯 항상 공부를 매우 많이 하여야 하고 스스로는 부족하다고 후회해야 한단 말인가?
筆者가 일전에 모 기관에 원고지 5매정도의 단문을 보내면서, 원호(援護)가 보훈(報勳)으로 표기되는 국민의 정서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조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인간다움을 누릴 권리를 우리 모두가 평등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 하였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당시 법무부장관이라는 조금 덜 떨어진 사람이, 참석해야 하는 행사장에 지각할까 조바심이 나서 그 바쁜 순찰차를 앞세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여 달리다가 전 국민의 손가락질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조금 일찍 출발을 하든지, 아니면 꽉 막히는 고속도로 상항을 개선해야겠다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지각을 하더라도 준법 주행하며 행사장에서 지각을 양해 받을 생각을 해야지 국민의 안위를 무시하고 초등학생들도 안할 그런 짓거리를 했었어야 하겠는가? 항상 그렇게 법을 무시하고 난행을 부렸다는 말은 아니다. 장관이란 직책까지 오르는 여행길이 얼마나 모범적이고 열성적으로 살아 왔겠는가?
그래서 공인(公人)은 범부(凡夫)보다 더욱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인데, 뉴스에 비쳐지는 사회의 지도자들은 암기력 뛰어난 법조인들의 판단 앞에 몸을 바둥바둥 떨면서 가슴 조리며 부끄러운 모습들을 자주 보인다. 지금쯤은 그분도, 죄 없는 순찰차를 고속도로 역 주행 앞에 세웠던 정말 못난 행동거지를 후회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모르긴 해도 그 사람도 죽으면 묘지 앞에 ‘아무개가 장관을 했노라.’하고 표시할 것이다.
지금은 고향출신의 법조인이 몇분 계시지만, 어릴 때 筆者의 고향에는 법률을 많이 알고 계시는 분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가뭄의 논물 싸움 판결도, 겨울철 사랑방의 마작이나 화투장 근절도, 빚쟁이의 독촉에 힘겨워 마신 술 취중 버릇조차도, 筆者의 조부님이시던 覺軒(각헌) 어르신의 놋재떨이를 탕탕 치는 장죽 소리 한두 번이면 조용해졌었다.
각헌 어른은 큰 소리로 야단도 않으셨고, 사극(史劇)에 나오는 멍석말이도 없었고, 방원이처럼 칼잡이도 동행 않으셨지만, 멀리서 그림자만 보이셔도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고 예로서 따랐던 기억이 있다. 연세가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모든 면에서 옳고 바른 모습을 보이시던 선비의 기풍에 존경을 표한 모습이었을 것이란 자부심을 가져 본다.
대대로 종손이었던 覺軒 어른의 직전 두 대(代)의 외동혈통이 갑자기 팔형제의 대 가문이 되었을 때, 얼마나 곧고 바른 생활을 걷고자 노력하셨으면 놋재떨이 소리 한 두 번이면 항소나 상고 없이 종결되는 힘을 보이셨을까? 휴일이 돌아오면 슈퍼맨(super man) 각헌(覺軒) 할아버님 유택을 찾아서 “할아버님이 정말 존경스러워요.”라고 재롱부리려 등산을 하고 싶다.
수필가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74호입력 : 2016년 0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