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83호입력 : 2016년 07월 26일
ⓒ 고령군민신문
비가와도 여유롭게
비가와도 여유로운 늙은이가 있다. 오래전의 우리네 조상님들은 양반(선비)은 절대 비가와도 경망스럽게 달리는 법이 없이 유유자적하며 걸어 갔다한다.
아니 어떠한 경우라도 천천히 품위를 잃지 않고 걸어야 진정한 사대부 양반이란 칭송을 들을 수 있었기에, 지금의 모델(model)들이나 정형외과 의사들이 보면 뒤로 자빠지며 놀랄 소위 ‘八자 걸음’으로 최고품격 품위를 유지하면서 걸었다고 한다. 소낙비가 올지라도.
하지만, 다시 생각하면 양반네 모두가 그러하였을 가능성은 아주 적다. 임금이나 중전께옵서는 시종(侍從)이 햇볕가리개와 비 가리개를 바꿔가면서 모셨을 것이고, 무게 있는 소위 지체 높은 관료들도 가마를 타거나 말을 타고 행차를 하셨을 것이니, 비가와도 천천히 걸었을 대상은 양반의 후손은 맞지만 가세(家勢)가 기울어 종을 세우거나 말잡이를 앞세울 수 없는 양반후예들이 남의 눈을 의식하여 부자연스럽게 처한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웃음을 만들어 본다.
결국은 나물 반찬 먹고도 이쑤시개로 “갈비 뜯었노라!”하는 체면치레 같기도 하다. 물론 체면 허위 포장도 되거니와 가난한 살림으로 상대방이 측은하게 여길까? 염려하여 베푼 심리적인 배려라 하더라도 크게 본받을 만한 것은 아닐 듯하다.
연일 오락가락하는 장마철에 오늘은 물동이를 뒤집어엎은 듯 그야말로 장대비가 오후를 밤으로 만들고 있다. 태양광을 이용하여 주위환경이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켜지도록 만들어져 있는 가로등은 ‘이게 무슨 난리고 응?’ 하는 듯 눈들을 크게 뜨고 있지만 워낙 빗줄기가 세차니 흐릿하게 보인다.
아니 늙은이라기보다 초노(初老) 즉 얼치기 늙은이가 조금 찢어진 비닐 조각으로 임시 막음한 유리 깨어진 아픔을 안고 겨우 버티고 서있는 미닫이 너머에서 막걸리에 힘을 얻어 호기까지 부리며 잠시 천하 영웅이 되어서 늦은 오후를 장식하고 있다. 조선의 양반님 허세처럼.
별이 보이는 날이라면 제법 흥미롭게 제몫을 하던 가로등이련만 현 처지로는 찍소리 못하고 비를 맞으면서 숨죽이고 있는 애처로운 모양으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고 있다. 여름밤의 대표 볼거리인 ‘전설의 고향’이라도 두어 편 촬영하여도 될 듯 음산한 기분조차 드는 시골 읍내 장터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선술집에서 주인 노파마저 하품을 하며 돌아앉아서 졸고 있지만, 초로(初老)는 묵은지 축에도 못 드는 쉰 냄새 펄럭이는 김치 쪼가리와 씨름을 하고 있다.
막노동조차 비로인해 못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난 것일까? 도시에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던 자식 놈이 ‘해고’라도 당했다고 며느리가 전화라도 했나? 그래서 요번 제사에는 참석 못한다고 말이다.
아니면 막 수매 끝난 양파 값이 폭락했나? 소 값은 좋다 하더라만 병들어서 수의사가 다녀갔나? 마누라가 아파서 저승길 재촉하고 있지만 못난 손자놈 등록금 때문에 머리 아파서 마시고 있는지 모르지만, 여하튼 글쟁이 눈에는 측은하면서도 약간의 흥미를 돋우고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저 노인을 실직하였거나 막 정년퇴직하고 막노농 일 못 나가 화난 노인으로 만들고 시 한 수를 지어 마음을 실어 본다.
夏 翁 夏天盆復雨條長 街樹間枝閃電光 車斷道路流水急 失職閑翁醉醪香
여름비가 동이 엎어 놓은 듯 쏟아지며, 가로수 가지 사이로 번갯불 번득이며, 차 끊어진 도로 위 흐르는 물조차 급하지만, 일 없어 한가한 노인은 막걸리 향에 취하여 있구나. 노인장, 그래도 당신의 내일 아침은 햇빛이 포근히 비칠 것이요. 오늘 밤에 죽지 않는다면.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83호입력 : 2016년 07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