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85호입력 : 2016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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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은 말이 아니라 행동
요즘은 우리와는 지구의 정반대 방향의 지점에 위치한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리우데자네이리주(리우:Rio)에서 열리고 있는 2016년 하계 올림픽 이야기가 회자(膾炙)되고 있다.
세계 3대 미항(美港)으로 자연과 인공이 너무나 잘 어우러진 항구도시 리우는 2012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된 곳으로 유명하다. 적도에서 유입되는 브라질 난류의 영향으로 연중 기온차가 작은 열대기후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 곳인데, 1502년 1월1일 포르투갈의 항해자가 처음 발견한 지역으로, 대서양과 좁은 입구로 연결된 구아나바라만(灣)을 강으로 잘못 알고 포르투갈어로 ‘1월의 강(江)이라는 뜻의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라고 명명(命名) 된 도시이기도하다.
그 후 포르투갈과 프랑스의 몇 차례 상호 쟁탈전이 반복되다가 포르투갈이 최종 승리하여 1763년부터 식민지로 삼고, 금과 다이야몬드의 무역항으로 사용하다가 1822년 브라질왕국으로 독립한 뒤 공화국성립을 거처 1960년 브라질리아로 옮기기 전까지의 수도(首都)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대한민국 선수가 우승을 하여 현지에서 외국의 취재진에게 소감을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나라 말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하고 이 포르투갈어를 다시 영어로 통역하는 기이한 장면도 설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지구촌 사람들의 즐거운 축제임은 분명하지만 모두가 기쁨을 맛보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국적도 없어 ‘난민’이란 이름으로 참가한 선수가 있는가 하면, 4년 아니 길고 긴 젊은 날 모두를 집중하여 훈련하고 기술을 연마하여 명예스런 월계관을 얻고자 하였으나, 순간의 실수로 패배자나 실격자가 되어 짙은 눈물을 흘리는 이가 있고, 그간의 큰 승과가 없어 별반 명성도 없었지만 기득권자의 자격실격에 힘입어 겨우 참가 자격을 얻은 사람이 수상식의 한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서 자국의 국가(國歌)를 가슴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프랑스출신으로 올림픽부흥운동을 시작하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창설하여 근대올림픽 경기의 창시자가 된 Pierre de Coubertin(쿠베르탱)은 [참가하는 모두가 승리자] 라고 말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을 희석시키고자 노력하였지만, 그래도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가장 큰 박수를 받는 것 같다.
올림픽 우승자가 받는 금메달의 값은 백여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 값어치를 물질로 환산하여 말하지 않고, 영예로움과 존경의 뜻으로 어떤 이는 국가의 영웅이 되기도 하고 전 인류의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올림픽게임의 수상자들이 머리에 쓰는 월계관(月桂冠:laurel crown)은 월계수 잎을 역어서 만든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제전 경기가 한창 성대할 무렵, 우승자의 명예를 나타내기 위하여 태양신을 숭배하는 아폴로의 신목(神木)인 월계수의 잎으로 만든 관을 수여한데서 유래한다. 지금은 명예라는 의미로 쓰이며 존경이란 뜻도 내포하고 있다.
조금 길을 빗겨나서, 역대로 대통령들께서 대국민 연설을 하실 때는 모두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로 국민을 존경한다고 항상 말씀 하셨다. 지방정부의 의결기관인 군의회 의원들도 입만 열면 ‘존경해 마지않는 군민 여러분’을 외친다. 심지어는 시시비비를 가리는 법정에서도 검사나 변호사가 시도 때도 없이 “존경하는 재판장님.”하고 말문을 열면서, 죄가 있음을 증명하기도 하고 죄가 없음을 하소연하기도 하는 모습을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면 저들이 그렇게 많이 남발한 ‘존경 한다’는 말이 올림픽경기에서 승리하였다는 증표인 메달(medal)보다 값어치가 적은 것이었을까? 문득 고교시절 윤리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신문을 배달하는 일로 스승님 댁을 방문하면 항상 신문을 곱게 받아들고 대청마루에 앉아 계신 머리와 수염이 온통 백발이신 할아버님 앞으로 가서 곱게 꿇어 앉아 “아버님 오늘 00이 신문에 났습니다. 또......” 하시면서 하나하나 읽어 드리면서 노인이 질문하는 것에 관해서도 아주 조용히 말씀 올리시던 모습이 ‘존경하는 행동’이라고 筆者는 생각하고 또 그렇게 배웠다.
당신의 신문 전달식(?)이 끝날 때까지 筆者를 기다리게 하는 때가 흔하여 항상 가장 마지막에 가곤하기도 했지만, 한번도 ‘존경하는 아버님’이란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셨지만 정말 존경하는 모습임을 몸으로 보여 주셨던 것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입으로 말하곤, 행동은 국민을 무시하고 범법적인 부정행위를 물고기가 물 먹듯 하는 몇몇 못난 사람들보다는, ‘존경하는 아버님’ 하지 않고도 사춘기의 筆者를 정신 차리게 하셨던 산골 선생님이 저렇게 박수 많이 받는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처럼 존경하고 싶은 마음이 용솟음친다. 뵙고 싶습니다. 나의 스승님.
수필가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85호입력 : 2016년 08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