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97호입력 : 2016년 11월 15일
ⓒ 고령군민신문
공익은, 머슴보다 자율능력자가
대붕(大鵬)은 하루에 9만리를 날수 있은 크나큰 상상의 새다. 옛날은 9만리가 매우 멀고먼 거리였지만, 요즘이야 4만㎞ 남짓인 거리를 그렇게 극대한의 숫자로 느끼지만은 않는다. ‘대붕이 9만리를 난다.’는 뜻이 도보 중심이던 시대에 매우 빠르게 또한 쉼 없이 장시간 날아서 가는 힘센 상상의 동물임을 묵시적 이해하고, 무한정인 자연의 큰 힘 앞에 지혜롭게 대처하고자 하는 인간의 생각을 표출한 말임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인간은 Totemism 이나 Shamanism등의 형태로 조금이라도 특이한 자연 현상이나 형태의 특징적인 무엇에 의지하여 자연을 극복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길고긴 역사의 흐름으로 인간의 지혜가 발전하고 지식이 쌓여감에 따라 믿음의 대상이 자연에서 구체적인 대상 즉 사람 중에 지혜롭거나 힘센 사람을 신격화하여 맹신에 가깝도록 믿고 따름은 자연현상이다.
이 믿음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지만, 나쁘게 이용하여 공익이 아닌 사익에 사용하거나 남용함이 문제점이다. 근·현대사회에서는 지혜나 지식이 재화용역을 반대급부로 취득 할 수 있고 잉여의 재화를 저장함으로서 재창출의 Energy가 되는 순환이 인정되는 것이라 본다. 1+1=2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단순경제라면 간단하련만, 1+1= 2+Ω인 세상을 살아가노라니, 요즘 소식통들이 엄청 시끄럽고 하룻밤에 수십만개의 촛불이 거리를 헤매면서 목소리를 높여 도깨비놀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의견이나 힘이 무리의 대표화되는 것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명목상의 대표임은 인정을 하면서도 보다 첨예하게 소집단으로 분화되면서 이익창출이나 권리 주장을 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 본다. 문득 선거철만 되면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한 말이 “머슴처럼 일 하겠습니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잠간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이 아주 위험하고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임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는 산업혁명 전후로 이 말이 잘못됨을 인식하고 사라졌고, 동양에서도 서양의 항해술에 힘입어 눈뜨면서 힘을 잃은 말이 아닐까?
머슴은 종이나 노예에 가까운 뜻이 있다. 머슴은 선택권이 없이 주인의 명령에 맹목적인 충성만 허용되는 것이니 선거로 뽑아놓은 사람이 아무런 판단력도 없이 주인의 지시만 일 할 것이 아니라,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공익을 극대화시킬 의무가 있음을 모든 공직자는 잊으면 곤란하다.
우리나라의 가장 최상위법이며 근간인 헌법에 명시된 국민이나 주민이 주인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국가고시 시험 볼 때만 기억하였다가 잊어버렸는지 꼴사나운 모양새를 보이는 경우가 너무 흔하다. 물론 법령이 정한 범주 안에서 국익이나 공익을 위하여 권리를 행사함은 칭찬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 권력의 힘을 사익이나 일부사람들에게 편취를 하도록 사용하는 경우는 범죄행위가 되는 것이다.
선거 출마자나 공직자는 “법으로 정한 공익의 일을 최선을 다하여 제 능력을 발휘하겠습니다.”라고 해야지, “머슴으로 일 하겠다.”하는 소위 자리나 지키는 사람처럼 소극적인 일을 하겠다니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공익이 아닌 개개인의 사익에 이용하는 것이 아닐까? “자율적으로 능력을 발휘하여 공익 창출을 극대화 하겠습니다.”하는 능력자를 선택해야 밝고 희망적인 사회 건설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볼 때, 상위 그룹의 권력자의 옆에 서서 사진 몇 장 찍었다고 소신도 없고 능력도 없는 사람이 머슴이 되겠다한다고 선택하면 언제 지역 발전을 기대하겠는가? -수필가 동화 한 봉 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97호입력 : 2016년 1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