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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아리랑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99호입력 : 201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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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군민신문 

고향 아리랑

소년에게 꿈을 키워주는 고향이 있었다.
하지만 고향을 떠나고 싶어서 몸부림 친 때가 있었다.
마음 조급히 먹지 않아도 타향으로 떠돌면서 그리움으로 몸부림 칠 대상이 고향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면서, 도시 생활이 ‘청운의 꿈’이라고 포장을 하며 고향을 버리는 것이 선각자인 양 떠나고자 했었다.

땅은 거짓말 않는다며 주야로 매달려있으시던 부모님의 빈농의 성실함에 대한 일탈 행위를 하고서도 참신하고 희망적인 젊은 생각도 이해 못하는 어른들의 잣대라고 비판하며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말이다.

여름이 되면 소년은 매일 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소 꼴 먹이러 마을을 감싸 앉듯 둘러쳐진 어두운 산을 올랐었다.
눈길 끝자락 너머로 아스라니 보이는 산 넘어 그곳에는 소년의 가슴을 채워 줄 무엇인가가 있을 줄로 믿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 알프스 산자락의 목동인 하이네가 부르는 요들송이 진정한 노래라고 맹신하며, 이렇게 시들한 고향을 무릉도원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떠나야 된다고 굳게 믿고 스스로 마음을 위로하곤 했었다.

그 시절 읽은, 소설가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 어니스트가 되어 보고 용기를 얻어 고향을 떠나야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란 구름 한 조각을 가슴 한편에 품고 자랐다.
그러나, 큰 소리로 외치며 자랑하고 싶었던 포근한 마을이, 어렵게 구한 동화책 속의 알프스 산자락 보다 아름답게 내려다보이는 동네가 내 고향이었기에 현대그룹의 총수였던 그분처럼 가출은 못 했었다.
하지만 고픔의 어려움이 동무와 노니는 꿈속의 가위 눌림처럼 언뜻언뜻 아킬레스근으로 다가와 가슴 아파도 떠나고 싶었던 곳이었다.

고향의 의미도 깊이 알지 못하였고, 삶의 둥지가 무엇을 말 하는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면서, 고마움이 아니라 부족하고 아쉬움이 묻어나는 억눌림을 벗아 나기 위해서라도 떠나고 싶은 곳이었고, 고픔의 현실은 온통 더하기 아니 곱하기만이 사칙연산의 모두 인양 밤낮없이 일하는 어른들의 굽은 허리를, 얼음이 둥둥 떠내려가는 미시시피강을 건너가는 어머니를 바라다보며 채찍이 무서워 울지도 못하는 어린 흑인 노예의 아픔으로 바라다보며, 고픔 없는 풍요로운 세상을 무지개로 정하고 박수 받으며 이곳을 등졌었다.

집채보다 큰 바위 덩어리가 물살과 같이 흐르면서 자갈 모래 되어 바다에 도착하듯, 소년은 세상풍파에 시달리며 살갗은 검고 주름지고 윤기를 잃어갔으며 머리털은 온통 배꽃이 되어 너풀거리고 눈가에 주름살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그토록 가슴 저리던 고향이 그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영원히 기다려주실 것으로 믿었던 어른들이 하나 둘 하늘로 여행을 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어릴 때 맛보았던 고픔보다 더 진한 일기장이 되어 가슴이 아파왔다.
탕자를 받아 줄 아버지가 없는 고향, ‘큰바위 얼굴’로 환영 받을 인물이 못된 초라한 자화상이 발걸음을 무겁게 하였지만, 인구 감소로 고향 마을이 폐쇄된다는 현실 앞에 주저앉아 보았다. 고향땅에.

빙판 위의 팽이가 되어 정신없이 살아온 반백년의 일기장 속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아닌 추억만이 웅크리고 앉아서 눈만 껌벅이고 있다.
다만, 어릴 때 그렇게도 넓고 웅장하던 ‘해명 어른’의 사랑채 앞 ‘큰 마당’이 작고 아담하여 오히려 귀엽게 느껴짐으로 쓴 웃음을 지어 본다.
이곳에서, 분단장한 누나의 화혼식이 있었고, 새벽의 마지막 어둠속으로 건너 마을의 예배당 종소리가 백일홍 향기에 실려 맴돌아 사라져 갈 즈음에, 할아버님의 놋재떨이 탕탕 치시는 소리와 함께 “으험” 하시면서 울려나오던 글 읽으시는 옥음이 추억으로 살아 있었다.

비록 금메달을 얻진 못 했지만, 낙오하지 않고 결승선을 넘어서는 마라토너처럼 위로 받고 싶은 흘려간 소년은, 열병 앓는 환자처럼 구슬 같은 땀방울을 흘려도 보았고, 하계 올림픽 체조 선수모양으로 허리 숙여가며 눈치도 보았으며, 때 안타는 우중충한 빛깔의 사무실 벽에 시계가 있는 줄도 모르며 밤이 낮 인양 일터를 뛰어다녔다.
디지털의 아름다움보다 믿음직한 아날로그 태엽 손목시계가 미덕이란 생각을 키워 왔지만, 초일류 고등교육을 받은 며느리의 논리 앞에서는 어린 손녀 가슴에 고향 전설을 심어 줄 수 없었다.

먼 옛날 나지막한 초가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하얀 양털 같은 연기가 남기고 간 모닥불에 까맣게 탄 감자가 그립기만 하지만, 가스오븐레인지속에서 조금 짙은 밤색이 된 고기 덩어리는 암을 유발한다면서 버리는 아들 녀석 앞에,
“ 아들아, 고향이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지만 살다 보니 고향이 오히려 편하더구나.”란 말을 전해 주고 싶지만 입안에만 맴돈다.

농사풍년 친구흉년이라고 “동무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애원하며 술친구로 불렸는데.
내년 봄 앞개울에서 천렵하며 놀자던 녀석은, 전화기 내려놓기도 전에 뭐가 급해 꽃가마가 아닌 리무진에 실려서 고향을 찾아왔다.
향촉 불 밝히면서 연기를 핑계 삼아 눈물 한 줌 나누워 주고 싶었지만, 완장 찬 젊은이가 산불조심 강조하며 그마저도 삼키라 하네.
두 다리 뻗 당기며 어미젖을 삼년 넘게 빨던 것을 내가 빤히 보았거늘, 상주 녀석은 세 시간 만에 삼우제도 마치고 탈상하고 떠나가는 모양을 보며, 늙은 소년이 부르는 이 노래가 “고향 아리랑”이란 걸 너는 알고 갔느냐? 동무야.
-수필가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99호입력 : 2016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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