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하늘아래 허리 굽혀 살면서도 길고 긴 역사를 보듬고프라. 따사로운 님 만나면 웃통 벗어 걸쳐보고 서느로운 벗 만나면 구름 한 점 맛보면서 밑바닥 인생이라 죄지은 것 없으련만 노래한답시고 춤사위 노닐었으니 발밑에 개미죽임 외면 한 것 많았을 터
아이야 이것조차도 바람결에 배운걸세.
아 세월은 와 이리 빨리도 흐르는가? 독자들의 푸짐한 사랑을 받으면서 성글은 글줄을 올려 드린 시간이 벌써 해가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회심곡(回心曲)에 어머님으로부터 살을 받고 아버님으로부터 생각을 받아서 태어났으니 그 은공을 잊지 말라 하였으나 , 못난 인생이 수시로 잊고 있다가 오늘처럼 세월의 매듭을 지나면서 깊은 회한의 반성을 하곤 하였지요.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엄중한 규율이 필요한 군율(軍律)에도 한 두 번은 실수를 용서한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매년 반복하여 후회하면서 “내년에는 조금 더 잘 해야지.”하면서 다짐을 하곤 했지만 요 모양으로 역시나 보잘 것 없는 밥벌레로 한해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앞의 노래 말은, 筆者가 지난 여름철에 서울의 조그마한 지하역에 뜻을 같이하는 동아리에서 잠간 전시하였던 배너(Banner)시화 작품인데, 지난해 년 말에 타계하신 글 스승님의 훈시를 바탕으로 쓴 글이지요. 아마 제가 삼무여행을 떠난 시기의 한 달 전일 것 같기도 한데, 솔뫼 선생님께서는 “한번 뱉은 말은 되돌려 담을 수는 없으나 마음으로 반성 할 시간과 기회라도 주지마는, 글쟁이 한 줄 글은 아무리 반성을 해도 새로운 독자의 가슴을 다독여 만져주지 못하니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으므로 가슴에 담아 두었었지요. 다소의 노력을 하였으나, 모든 독자가 다 만족하지는 못 하였으리라 사료되어, 독자 분들의 더욱 폭 넓은 사랑을 주십사고 부탁드리면서 전해오는 민담(民譚) 한 수를 소개하겠습니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기 십여 년 전에, 호남의 백씨 성을 갖인 대 갑부가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인색하기 그지없어 주변의 원성이 자자했었다는군요. 그러나 천적은 있는 법이라, 모든 사람들이 파계승이라고 쑥덕대는 골통스님(孤通)이라는 분의 말씀이라면 조건 없이 수긍을 하고 깊은 믿음으로 추종하였답니다. 그렇게 된 것은 비가 올지, 아니면 가뭄이 들지를 잘 알고 미리 말해주어 그 말씀을 따라 농사를 하니 연년이 풍년이 들어서 백 부자는 이 승녀를 아주 잘 모셨다는군요. 어느 날 고통스님이 백씨에게 갑자기 십만 냥이나 되는 큰 시주를 하라하여 며칠을 고민하다가 큰맘 먹고 시주를 하였더니 갑자기 골통스님은 자취를 감추고 시세말로 잠수함을 탔다는군요. 백씨는 이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더욱 고립된 생활을 하며 재산을 모았답니다. 해가 바뀌어서 큰 흉년이 들었고, 백씨는 또 ‘이웃 사람들이 곡식을 얻으려오면 어떻게 할까?’로 고민을 하면서 창고 단속을 단단히 하였답니다. 설상가상으로 암행감찰을 하는 어사또가 출두하여 “ 백성들의 고통을 아우러지는 않고 오히려 높은 이자놀이를 한 백가는 들어라.” 하니 이건 도무지 말로 할 수 없는 낭패였지요. 백 부자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기의 죄 용서를 어사또께 말해 줄 사람이 없을 듯 하였지요. 일생을 인색하게 살아왔고 살림만 모아왔으니 누구도 자기편이 되어 줄 언덕이라고 기대 할 수가 없다고 낙심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어사또 앞에 떨고 있는데....... “사또! 백 부자 나리가 없었다면 저희들은 다 굶어 죽었을 텐데, 십만 냥이나 되는 거금을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쾌척하여 이 곤궁을 이겨내고 있는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백 부자를 칭송하여 어사또가 벌을 주기는커녕 나랏님의 큰상을 품신하였답니다. 사랑하는 독자여러분, 새해도 주는 복 다 받아 누리시소서. 그림자처럼 뒤에서 도와주는 골통스님 같은 천사를 이웃으로 얻는 행운의 새해가 되시길 기원하며, 정말 조그마한 여유라도 있으시면 여러분이 골통 천사가 되어보는 복락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수필가 동화 한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