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04호입력 : 2017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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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흐르다 보면
가고 있다. 세월도 가고, 역사도 가고, 바람도 가고 있으며, 물도 가고, 나 또한 본향 즉 미지의 그곳으로 정처 없이 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온다고 한다. 세월이 빨리도 왔다가 간다고 하고, 어린 새싹들에게 그대들의 역사가 될 희망찬 세월이 빨리도 올 것이고, 또한 그렇게 지나칠 것이니 준비 잘해서 허송세월 말고 알차고 보람된 생을 영위하라고 주문을 하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면서 ‘난 참 인간성 있게 착실히 잘 살아왔어.’라고 하기 보다는 ‘다시 생각해 보아도 후회 할 일이 너무나 많아 .’라며 회상(回翔)되어 오는 부메랑으로 감상(感傷)의 부담감을 힘겨워 하기가 다반사다.
가금류(家禽類)의 계절병으로 인하여 주산 정상의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어 한편으로 섭섭함도 있지만, 마음의 세탁이 부족한 지금의 처지로는 오히려 해맞이 행사가 취소되어 조용히 두 눈을 감고 평온을 가장한 마음의 전쟁을 치루는 지금이 오히려 진정한 감사(感謝)를 맛 볼수 있다.
인류 역사상 많은 선각자들이 나 아닌 너를, 그대들의 고통을 벗어난 참 복을 찾는 진리를 베풀어 주기 위하여 노력하고 심지어는 생의 맥락을 바꾸기까지 하였음을 상고(相考)해 볼 터이면 그래도 인간세상살이가 조금은 따뜻한 놀이 마당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당시의 왕자(王子)라는 비교적 안락한 세상살이를 획득한 지위에 있으면서도 주위의 너무나 힘들게 살아가는 중생들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여기면서 출가하여 6년이라는 길고긴 세월을 금식(禁食)과 금욕을(禁慾: 인간중심의 쾌락을 쫓는 욕심을 금함) 하시면서 고행을 하시다가 보리수 그늘 아래서 집중 정진한 결과 1주일 만에 득도(최상의 정신세계 입문)를 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자비(慈悲)심은 살맛나는 소식이다.
그리고 30여년을 당신의 사명을 완성시킬 준비기간으로 기도하다가 약 3년간의 세월동안 하늘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면서 때로는 떡으로, 어느 때는 채찍으로, 눈물겹도록 전하고는 생을 마감하고 다시 부활하는 엄청난 과정을 감당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지금 우리의 이 세상에 펼쳐진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지금 여의도의 시끄러운 정쟁들이 잠시라도 조용히 평온해 질 수 있을까? 촌부로 살아가면서, 보잘 것 없는 글 몇 줄 쓰면서 여의도 정치전쟁(政治戰爭)을 염려함도 약간 주제 넘치는 경우이겠지만, 잘 들어 보면 남의 잘못을 찾는 데는 목숨을 건 것 같은 열성들인데 정작 국민의 복락을 위한 추진 계획이나 정견을 하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간혹 비치는 듯 하지만 내용이 턱없이 부족한 한낱 정치놀음의 말장난처럼 들리는 것은 筆者만의 착각일까?
미국의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단편소설 [큰바위 얼굴]에 등장하는 주인공 어니스트 처럼 우리 오천만 국민 모두가 큰 바위 얼굴이 되어 보아야 조용한 나라가 된다는 말인가? 개인적으로 筆者가 이제 6학년이 되면서 약간의 마음의 소요(逍遙)를 느끼면서 어미품의 젖동이처럼 두 다리 두 팔을 뻣 댕겨도 보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주어진 몇 일간의 휴식시간에 노인의 품세에 관한 책자 몇 권을 읽어보면서 낙제점 면하는 노인이라도 되고자 다짐을 해 보았다.
일본의 소설가 소노 아야코는 노인(老人)은 나이의 정도가 아니라 ‘받고자 하는 마음이나 자세를 가지는 사람이 노인’이라고 했다. 나이가 80이라도 사회봉사 활동을 왕성히 하면서 물질이나 정신적이나, 기술이나 지식을 사회의 양성적인 발전을 위하여 재공 하는 사람은 결코 노인이 아니며, 나이가 비록 40이라도 남에게 의지하고 무료 제공 받기를 희망하는 마음이나 철학을 가진 사람은 이미 노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가의 표현법이 개성적일 것이란 점을 감안해도 깊이 사고(思考)해 볼 필요성이 있는 대목이다.
수년전에 筆者가 [思考와 事故]란 수필을 쓰면서 “예절은 양보이지 법이 아니다.”란 말씀을 올린 경우가 있었다. 이 말은 노인이나 임산부나 환자, 어린이들은 상대적으로 연약하므로 건장한 장정들이 좌석을 양보함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가난한 학생이 학업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고 매우 지친 상태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가 술 취한 늙은이가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대목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가난이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학생이 죄인도 아니지 않는가? 다만 부유한 돈을 가질 기회가 직.간접적으로 없거나 적었었을 뿐 아닌가?
새해 벽두(劈頭)에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씀만 올리면 모양새야 좋겠지만, 이미 고령화(高齡化) 사회가 전개되고 있는 이 시점에, 숫자놀음의 노인이 아무리 넘쳐나도 앞서 설명한 80세 된 젊은이가 많아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 설령 여의도의 철없는 정치꾼들이 실수를 반복하여 한다 해도 이러한 [나이든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를 굳건히 붙들고 발전시켜서 후세에 물려줄 용기를 가져 봄도 조금은 가치 있는 일 아닌가?
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으나, 그 세월에 동무하여 즐길 수야 있지 않는가? 봄철 천렵(川獵)이나 가을 풍객(風客) 놀이가 꼭 그렇게 나쁜 것이야 아니지만, 남들이 해외여행 한다고 꼭 인천공항의 출국 게이트를 통과해야 사람값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무능하고 촌스런 사람일가? 그래도 흐르다 보면 가는 세월 속에 “아! 그분이 그립다!” 하면서 서낭당 돌맹이질 하듯이 무덤 앞에서 눈물 한줌 받을 큰바위 얼굴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04호입력 : 2017년 01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