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모성애가 짙었으면 어지간한 바람에는 꼼짝 않고 가지에 야무지게도 붙어 있는 어머니 자궁 같은 밤송이들, 무서운 가시로 철갑인양 쌓여있는 둥지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어린 아가 밤톨이 도저히 비좁아 못 살겠다는 아우성이 극도로 높아져도 조용히 미소 짖는 새아씨의 조그맣고 어여쁜 입처럼만 열어 주면서 인내(忍耐)가 무엇인지 태교로서 가정교육을 하는 참 군자의 기상을 품은 당신은 이름하여 栗이라 함도 겨우 알아본다.
하얀 빛깔로 우주를 품은 듯 고고한 옅은 비취빛의 배냇 옷이 햇볕을 받아 곱디고운 갈색으로 물들어 갈 즈음에야 정작 당신의 산고(産苦)를 진행하여 그것도 천천히 한 녀석씩 세상에 내어 보내는 어미의 정성을 배움을 기뻐한다. 급한 성정에 너무 크게 부피 자람 한 녀석들은 할 수 없이 떠나보내지만, 보내야 하는 하늘의 법칙마저 죄 없는 죄스러움으로 고개 숙이며 자궁자체를 떨쳐내며 늦가을 살랑 바람에 업혀서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 정성을 감히 읽어 보며 가슴 떨려 갈무리한다.
어느 어미가 어린 자식의 목숨과 생존의 환경보존에 목숨을 걸지 않을까마는, 열매가 다 떠나가고 또 ‘한해의 사명(使命)’을 다 했노라 하는 안도감으로 이파리 한 올, 한 올을 북풍에 실어서 보내며 “이것이 삶이여! 이것이 삶이란 말이여!”를 노래하는 당신을 감히 우러르며 가을 나그네가 되어 본다. 가냘픈 떡잎이 고이 잠자고 있는 밤톨은 새 생명이 섭취 할 영양분이 보이라고 이름하고 있는 보드라운 포장 속껍질이 감싸고 있건만, 애타는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겉껍질안면은 융털로 되어 떡잎을 이중으로 보호하고 있음에 울컥하고 어머니의 향기를 다시금 가슴가득 안아 본다. 어미의 사랑을 넘치도록 받으면서 고이 자라 나에게 오신 고귀한 열매여! 진정된 나의 마음과 정성을 크나큰 숙제를 준 유성(流星)이에게 드리고파 당신(栗)을 선택하여 감사와 바램을 한 줄에 엮어서 축원(祝願) 한 다발을 향촉에 의지하여 올려본다.
친구의 편지 한 조각이, 지난 가을날(바람이 불고 저녁놀이 유난히도 곱던 그날도 낭만은 아예 꿈도 못 꾸는 아파트 붙박이 우편함에 고개 숙이고 처박혀있던 날)에 40139 식구가 되겠노라고 찾아 왔었다. 못난이 글쟁이처럼. 돈키호테 글쟁이에게 온 편지, 발신인 주소도 없이 떠돌이 별이란 뜻의 유성(流星)이란 닉네임만 적혀있는 봉투에서 벗 냄새와 사람향기와 국화가 농익어서 울려오는 노래 한 자락을 퍼즐 맞추듯 읽으면서 筆者의 마음을 더욱 슬프게 하였던 편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태어나는 아이를 유복자(遺腹子)라 하는데, 이 녀석은 유복(遺腹)이란 뜻도 알기 전에 바쁘게 하늘로 올라간 어미 덕택에 김유애(金遺哀)란 이름을 면서기가 호적에 올렸단다.
어린 학생시절 우리는 녀석을 “김유해”로 불렸었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遺를 流로, 哀를 별 중에 으뜸인 해라고 하여 닉네임 유성이란 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문 한 장 보내고는, 별난 성품처럼 몇 년에 한번 정도 소식을 주는 진정한 돈키호테 녀석이다. 녀석은 아주 어릴 때 잠간 동무로 지냈으나, 동자승을 지나 대처승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여하간 조금 특이한 성품임은 틀림없다.
유성이가 편지에 알밤을 준비해 놓으라는 뜬구름 같은 화두(話頭)를 주었는데, 둔한 머리로 아직 筆子는 유성이의 숙제를 알아내지 못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정성을 깃들인 축원상(祝願床)에는 棗栗梨木市라 하여 과일 놓는 순서를 전해오는 말씀들을 하는데,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둘째자리에 서라는 소린가? 우스갯소리로 棗는 열매 하나에 씨앗이 하나 밖에 없으니 의정부의 수장인 영의정을 뜻하고, 栗은 한 송이에 세 개의 예쁘고 매끈한 알톨이 서로 부둥케 안고 있으니 삼정승(三政丞)을 나타내며, 梨와 木市는 씨앗이 열매 하나에 여섯 개씩 자리 잡고 있으니 자손이나 후손들의 과거 급제하여 출세를 할양이면 육조에서 수장(首長)에 이르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였으니 출세하라는 축시인가? 하다못해 정승처럼 고귀한 성품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가라는 말인가?
부처의 자비와 중생구도의 대의를 명분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승려가 무슨 심정으로 어릴 때 동무에게 이런 속 좁은 주문을 하였을까? 아마도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도록 깊은 명상을 하며 삽질을 하지만 나만의 우물을 파지 못하였고, 그렇다고 발신인 주소도 없는 유성이를 찾아 갈수도 없어서, 부득불 서두(書頭)의 글처럼 밤톨을 보면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효도하라는 뜻일 것이란 미봉책 답을 찾아서 품어보았다.
부모님의 지극정성의 보호로 성장하여 출가(出家)하여 큰 뜻을 각성(覺城)하는 것이 일상의 승가생활이라면 유성이는 아예 엄마 아빠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슬픔, 어려움, 외로움, 고독 등등 소위 음지 말들을 품고 살았을 것인데 새삼 孝를 화두로 던진 이유를 알 수도 없고 또한 나의 짐작이 맞는지도 모르지만, 돈키호테 유성이가 불쑥 나타나거나 서신을 줄때까지는 또 이렇게 믿고 실천해 보고 싶다.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06호입력 : 2017년 0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