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09호입력 : 2017년 02월 14일
집 한 칸 없는 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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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은 오늘도 뜨고 있다. 매우 밝게. 요즘 길을 걸어가면서도 손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젊은이들의 성정처럼 마음이 매우 바뿐 듯 둥그렇게 부잣집 맏며느리 얼굴을 한 보름달이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둥실 저 혼자 외롭게 떠올라 궁궐 속에 갇히어 있다. 그것도 대 보름달이.
추운바람에도 붉게 달구어져 북쪽에 더 가까운 서쪽 하늘을 마지막 열기까지 다독이는 태양은 아직 두어 뼘이나 갈 길을 남겨 놓고 있건만, 또 저렇게 막무가내로 치고 올라온 것 같은 저 그림자는 광화문 네거리를 휩쓸고 다니는 촛불인가 태극긴가의 집회를 해야 할 정도로 급한 용무가 있는 듯하다.
인간 세상사의 어긋난 규칙들이 머리를 아프게 하더라도 십장생(十長生)이라고 명명된 이름값이라도 하면서, 좀 묵묵히 천천히 동쪽 산 능선에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 가지에 앉아 쉬면서, 이 모자라는 글쟁이의 詩 한 수로 만들어질 달집 한 칸씩 만들어서 나누어 갖자고 그렇게도 기원했건만...... 하기야 요즘 세상에, 지 새끼 잘 되라꼬 무릎 아프도록 기도하면서도, 옆집 독거노인 기아사(飢餓死) 소식도 냄새난다고 민원(民願)이 들어와서 복지사와 순사 나으리가 확인해야 ‘아 그 노인이 요즘 안 보이드니만 저렇게 되셨구먼......’하는 풍속도가 또 그렇게 낯설지 않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 세상 아닌가? 그래도 달님은 내 소원을 들어 줄줄 알았는데......
오지랖 넓고 실속 없는 촌구석 돈키호테 글쟁이인 筆者가 요즘 통신사들이 전화나 문자는 무제한이고 데이터 송수신만 제한을 받는 체계의 손 전화기를 사용하면서 지인들에게 전화하기를 매우 즐기고 있다.
그러면서 받은 느낌이, 꼭 무슨 부탁을 하거나, 반듯이 확인을 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 경우에만 전화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의아해 하는 답문을 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수면시간이거나 영업업무 시간이거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을 때에 소위 070 따위의 판촉이나 보이스피싱을 의심 할 정도의 불특정 무작위 전화가 오는 것은 조금 마음의 부담을 넘어서서 불쾌한 경우가 있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안면을 터고 있는 사이인데도, 사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선출직 공무원을 꿈꾸는 사람도 아니고, 독거노인들의 안녕을 확인하는 공무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의 안위를 책임지는 중요한 결정권자의 직위에 있는 사람도 아닌데, “왜? 안부 문는 전화를 하셨냐?”는 듯이 반문을 하며 혹여 보험이나 여타 어떤 상품을 판매하는 부탁이라도 할 요량이냐고 되묻는 뉘앙스를 보일 경우 정말 몸서리 나도록 이 사회가 정이 메말라가는 느낌이 들어 서러웠다.
筆者는 아주 어릴 때부터 동네를 돌면서 만나는 어른들마다 절하면서 “안녕하셨어요?”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예절이라고 배웠고, 자주 찾아뵙지는 못 하더라도 지인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습성은 아닌 듯한데, 꼭 무슨 부탁이나 요즘 膾炙되는 부정 청탁이나 하려고 전화를 했냐?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느낄 때, 언제였던가? 춘원 이광수 선생의 [소년의 비애]를 읽고 받았던 느낌보다 짙은 감상(感傷)을 맛 보곤 한다.
몇 년 전에는 소위 풍류를 안다는 이 지방의 여성 글쟁이에게 문단 등단 안내를 해 줄 요량으로 몇 번 전화를 했더니, 혼자 사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 아니라면서 무슨 큰 죄악을 저지른 것처럼 펄쩍 뛰더니, 筆者의 순수한(모자라는?) 마음을 이해 한 것인지, 포기를 한 것인지 요즘은 전화 연결되면 십 여분 정도의 시간을 거뜬히 적선 해 주고 있다.
지난해 백제 후예들이 사는 고을에서 지상 한시 백일장(紙上漢詩白日場)이 있어서, 주제넘게 한수 보낸 적이 있는데 [花上乾裙得嘲弄]이란 글을 筆者의 얼굴이거나 하다못해 거울 속에 비쳐진 내 모습일거란 생각으로 자작 한시 한 귀퉁이에 얹어서 보낸 적이 있었다. 본시 글쟁이의 고백인 글 작품 속에는, 남의 글을 인용하거나 도용 혹 차용하지 않는 한 자신의 가슴에 고여 있는 생각 틀이 많이 뒤틀림 되어 나오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타고난 천성이 조직생활을 즐겨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늘아래 모든 생명체는 천부인권설에 입각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라, 돈키호테란 자칭 별명이 이름값을 한다고 믿고 있는 筆者는 이번 보름달이 슬픈 빛을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도와주고 바람도 칭얼거림을 멈추고 고요하기만 한데, 하필이면 구제역이라 하는 얄궂은 친구의 방해를 받아 [달집태우기] 호사를 왜 못 누리는가? 요즘 인기 절정의 직업, 요리사와 의술을 모두 갖춘 대장금처럼 앞에 대(大)자가 붙은 보름달이면서 이 촌 글쟁이가 그렇게도 원하는 달집 한 칸을 불살라보진 왜 못하는가? 내년엔 기를 쓰고 달집을 지어 보리라.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09호입력 : 2017년 02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