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1호입력 : 2017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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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다 너를!
“이 짓도 못 해 먹겠소.” 정말 배아지 꼴려서 못 해 묵겠소이다. 이 말은 장꾼 보다 장삿꾼이 더 많은 대가야 시장바닥에서, 장날 오후 얼큰히 오른 술김에 하는 정겨운 토박이 소리가 아닙니다. 전해오는 구수한 3대 거짓말이라는 정담(情談) 즉, “어서 죽어야지.”하는 늙은이의 중얼거림, “시집 안가고 홀아버지 모시고 살랍니다.” 하는 노처녀의 해맑은 인사말, “이거 정말로 밑지고 드리는 겁니다.” 하는 장사치의 넋두리처럼 정겨운 이야기도 역시 아니랍니다.
저 세상가고 나서도 자랑스럽게 반짝이는 까만 오석(烏石) 비석에 “ 國會議員00某氏 아무개 之墓” 하고 세울 자칭 나으리들의 목구멍에서 나오는 “내 맘대로 할 수 없어서 괴롭다.”는 말입니다. 눈물 나도록 부끄러운 말들 같습니다.
수년 전에 ‘징비록’을 비롯한 임진왜란 관련 서적들에 관한 조금 무게감 있는 글줄을 쓰면서, 무능하다 못해 차라리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 왕과 그의 옆에 서서 “지당하여이다.”만 외치던 대신들이 한양도읍지를 버리고 도망하면서 “미안합니다.”란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북향여행을 하는 뒷머리에도 백성들의 피맷힌 절규가 있었음을 잊지 말고 유비무한의 교훈을 눈물로 쓴 老臣의 고백을 소개 한적 있지만, 오늘 다시 그 시절의 눈물을 촌부(村夫)가 흘려 보고파집니다.
예수(Jesus Christ)를 배운다는 예수쟁이로 몇 십 년을 교회 문턱을 넘나들어 보았고, 혹여라도 부처님과 옛 성현들의 말씀 속에도 또 다른 보석 같은 가르침이 있을듯하여 책으로 말씀으로 접하고자 한 세월도 또한 가볍지 않음인데, 갈증만이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시골 글쟁이인 筆者가 자욱한 안개 속으로 떠오르는 화두(話頭) 한 줄을 보듬어 본다면 그것은 가장 쉬운 단어 “나보다 너를!” 임을 깨닫게 되어 독자 여러분에게 권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지구과학을 연구한 학자들의 말로는 이 땅의 인류역사가 수억 년이 넘는다 하고, 사회학을 공부한 사람들도 인류가 언어를 사용한 역사가 수만 년은 넘는다 하였는데, 어찌하여 이 간단한 “나보다 너를!”이란 쉬운 말을 모두가 몰랐을까요?
물론 앞에 언급한 소위 “세계 4대 성인”이라 칭송을 받는 현인들께서는 당신들의 목숨조차 내어 놓으시면서 불쌍한 중생들의 고통을 감해 줄 방편을 찾고 전해 주면서 이 땅에 오신 당신들의 사명(使命)을 다 하시고 가셨다는 기록들이 저리도 많은데 , 왜 모두가 힘들어 할까요?
筆者는 軍시절 의무병으로 근무하면서부터 수년전까지 복지와 요양업무를 보면서 무수히 많은 세상 하직의 순간 즉 임종을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정말 드물게 간혹 평안히 웃으면서 마지막까지 잘 돌봐 주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숨을 멈추시는 분들도 보았습니다만, 대다수가 무엇인가 말을 더 하려고 힘없는 입주변의 근육을 씰룩거리고, 연약한 손짓과 몸부림을 치면서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이 세상 마지막 몸짓으로 기록하고 가는 안타까운 순간들을 매우 흔하게 보았습니다.
이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생각은, 평안히 가시는 분들은 성직자들도 아니셨고, 저명인사도 아니셨고, 재력가들도 아니셨으며, 자식 많이 두신 분들도 아니셨으며, 훈장 받은 분들도 아니셨으며, 일생을 고향에서 편히 사신 분들도 아니셨습니다. 평소에도 자주 “내 것 아닌 너의 것”을 실천하시던 분들이셨음을 기억합니다.
조금 엉뚱한 말씀입니다만, 요즘 학생들은 사회봉사활동 시간을 어느 정도 채워야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할 때 사용하는 소위 스팩(Specification)을 얻어야 된다고 하더군요. 그렇고 보면 우리 사회에는 봉사단체가 넘치도록 많은 것도 같아요.
없는 것 보다야 좋은 현상이지만, 기록을 남기기 위한 봉사는 아니였던가요? 나의 생활에 영향력을 주던 어떤 사람이나 상항 때문에 봉사 활동을 하신 것은 아닌가요? 정말 순수하게 조건 없이 남을 돕고자 하신 봉사활동이 많으시다면, 독자님은 이미 부처와 같은 경지에 도달 하셨다고 볼 수 있고, 예수처럼 사명을 다 하셨다고 생각해도 된다고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말씀드려 보겠네요.
이토록 진정한 봉사 즉 ‘내가 아닌 너부터’의 실천이 어렵다면, 지금 이순간도 촛불 들고, 태극기 들고, “너가 무수히 많은 것을 잘못 했잔냐?”하면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그들을 향하여, 촛불을 꺼야 할 그 시간에, 태극기를 손에서 내려놓아야 할 그 시간에,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느냐? 또 정말로 너희가 너희 배부름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아파본 것이 틀림없느냐?” 물음 한줄기를 던져 보시지 않겠습니까?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1호입력 : 2017년 02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