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3호입력 : 2017년 0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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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에도 낙엽지고
가렵다. 괜스레 양 겨드랑이가 가려워서 창공을 날지 못하더라도 뜀박질이라도 해야 조금 진정될 것 같은 광란의 가려움증이 겨드랑이를 지나 이젠 아예 목구멍에 걸려있다. 답답하다. 옆집의 베트남에서 시집온 새댁이 만든, 출처 불명의 동치미 국물이라도 한 국자 얻어먹어야 시골 글쟁이의 모세 혈관이 쪼매 열릴 듯이 모두가 막혀 있는 것 같다. 으스스 흐트러진 생각들이 온몸을 휘돌아 나가려는 듯 솜털 보시시 일어나는 땀구멍을 찾아 비틀림이 용트림되어 오르는 느낌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다닐 수 있는 초동(樵童)이 되어, 나의 키보다 큼직한 지게처럼 생긴 멍에라도 흔들며 메아리가 더욱 웅장할 봄의 노래를 저렇게 눈치 없이 파랗게 높이 걸려있는 하늘에다 냅다 갈겨 쓰 버리고도 싶어진다.
겨울 끝자락에, 곰팡이 냄새나는 심심산골의 초병(哨兵)의 요새보다도 야무지게 열릴 줄 모르던 홀아비의 칙칙한 글방에도 한 줄기 무거운 소식이 창문을 열게 하였다. 모두가 논산의 육군 훈련소 방독면보다 우수한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산세베리아(공기정화식물:air filtring plants)를 화분에 수십 본이나 심어서 창문가에 보초를 세우고도 걱정되어 창문도 열지 않는 황사(黃砂)바람 부는 그날에도, 울컥하는 아련한 마음의 통증으로 멍든 겨드랑이의 가려움을 이길 수 없어서 시골의 돈키호테 글쟁이의 방문은 활짝 입 벌림을 하였다.
멀리서 보아도 희끄무레하게 시야에 확 들어오는 개울가의 얼음집, 아니 미처 다 녹지 못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연출된 오두막 모양을 닮은 얼음덩이 밑의 차가운 얼지 못한 물 한 동이를 마셔보아야 할 정도이다. 답답함이. 그래도 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믿고 있던 친구 녀석에게 “우리집에 보이차 한 잔 있다.” 하고 문자 메세지를 보내니, 녀석은 귀엽게도 우문현답을 보내 주었다. “그래도 우야겠노. 꿈 참고 살아야지.”하고 말이다.
잘못 된 것은 지금이라도 고처서 살아야지 하는 듯이, 반 바퀴 이상을 획 되돌아서 흘려가다가 결국은 씌익 웃으면서 희죽거리는 선 머슴애 닮은 사행천(蛇行川) 행로로 가고 있는 개울물 속에 거무티틱하게 반쯤 썩어문드러진 낙엽들이 웅크리고 모여앉아 수군거리고 있다.
결국은 모두가 속으로 삭이는 울분이 저렇게 썩어문드러지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을, 이 새벽에 서울 매연보다 짙은 황사를 마시면서 배우고 있다. 못난이는. 돈키호테의 안경보다 맑고 깨끗한 개울물에 천연스럽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굴참나무 녀석은 새싹 움이 발돋움하는 이 시기까지 추잡스럽게 이파리를 달고 있다. 정신머리 없는 녀석 같은 이라고, 모두가 갈무리하는 가을 끝자락에 이파릴 보내지 뭐 할라꼬 아직 달고 저 지랄이고. 웃기는 놈이다.
파랗고 싱싱하게 한 세월을 잘도 보낸 굴참나무 이파리가 아직 갈색 빛의 여운조차 퇴색되지 않은 힘없는 손짓으로 당장 내일 아침 햇살조차 기약 할 수 없는 마른가지를 부둥켜안고 쫑긋 세운 토끼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약한 소리로 [난 이제 떠나요]라고 노래를 하고 있다. 사실 이 굴참나무는 폭우와 벗하여 오던 싹쓸바람(hurricane)에 버금가는 왕바람(violent storm)에도 건장하게 버티어 내던 위용을 지녔고, 넓고 깊게 내린 뿌리는 할머님의 파마머리처럼 옹골차게 땅 거죽을 끌어안고 있으니 가뭄이 오나 장마가 지나가나 과히 십장생처럼 오래오래 잘 살아 갈 천복(天福)을 가졌다고 생각들을 하였다. 지난 가을 까지도.
철 잃은 냉기가 돌때도 시련이라 여기며 버티었고, 지구 온난화로 추워야 하는 제 맛을 잃은 겨울에도 웃음으로 참아오면서, 유선형인데다가 가장자리를 뽀족뽀족하게 만든 이파리를 바람 사이사이에 걸어놓고 소프라노와 알토, 심지어는 테너와 베이스 음역조차 연출하는 즐거움을 맛보는 푸른 청춘이 아니던가?
모든 제비들이 놀란 눈을 뜨고 강남으로 되돌아가던 그날에도, 놀부 보다 고약한 심술을 덕지덕지 달고 있던 하이에나의 허기진 배고픔, 아니 임신도 하지 않은 배부름 위에 더욱 악착같이 맹꽁이의 배부름이 되어가는 허상의 배고픔, 탐욕의 핏발을 저녁노을로 단장한 그것을 마냥 아름답다고 부추기는 바람소리에 단 한 줄의 노래도 준비 못한 시인(詩人)이 되어 버린 그림자를 벗하고 있다. 굴참나무는.
굴참나무는, 당신보다 몇 곱절이나 크고 두터운 이파리를 달고 있던 뽕나무나 오동나무들이 차가운 서리 내리던 그날 밤, 밤새 울면서 고민하다가 수맥을 닫고 떨쳐내며 한 줄기 가벼운 바람돌이에 내 몸 같은 이파리들을 우수수 보내던 아픔을 왜 몰랐을까?
바람개비 모양의 솜털 입은 갈대의 씨앗처럼 포장하여 멀리멀리 가서 제발 이 어미처럼 살지 말고 잘 살아달라고 기원하며 보내던 오동나무의 노래를 왜 못 들었을까? 봄날에 낙엽이 지는 굴참나무 이파리도 극락왕생을 할라나?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3호입력 : 2017년 03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