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7호입력 : 2017년 0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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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내 맘을 알기나 하니?
일전에 초등시절의 동기 동창회를 다녀왔다. 전문가를 초빙하여 음식을 준비해도 되련만, 추억을 먹고 사는 동창회를 만들자면서, 각자가 모임 장소에 도착하는 순서로 음식도 준비하고 시장도 보고 하는 모임이라 그야 말로 Well being이다.
이번 모임에서 크게 달라진 광경은, 초등 시절의 동창생 녀석들이 하나 둘씩 할머니가 되어 가더니 이젠 할아버지도 많아져서, 총각 아들을 둔 녀석들의 걱정거리인 ‘늦장가(?) 기우(杞憂)’를 하는 녀석들이 퍽이나 줄어들었다.
사회 풍속도랄까? 세태 흐름이 소위 싱글(for oneself)족이 늘어남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사위 며느리 자랑을 하는 동창회 모임에서는 약간 가슴 설레는 화두(話頭)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장걸음으로 재롱 피우는 손녀 녀석이 예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호기심이 있으면서 ‘아이고 녀석들아 이제 너희들은 인생 종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이다, 손자 손녀 자랑이.’ 라고 속내를 가지는 것은 꼭 질투심만은 아니다. 아직도 가슴이 아린다. 그 녀석 때문에. 연일 신문지상에 회자(膾炙)되는 이야기가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모양을 하고 있으니, ‘조놈들은 이런 험한 세상사 맛보지 않고 복지 낙원에서 살도록 해 줄 수 있어야 할 텐데.’하고 걱정을 하게 되니 앞서의 생각을 하게 된 듯도 하다.
초등 시절 육년간 한 학급으로 뒹굴던,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를 방불하던 칠십 여명이나 되던 녀석들이 하늘로 가고, 또 외국으로 이민가고, 득도 할 요량으로 소식불통으로 불참을 하니 겨우 서른 명 정도가 모이기 일쑤다. 허울 좋은 ‘조국근대화’의 일환으로 댐이 건설되었다. 학교는 물론 생활 터전과 고향의 향수마저 저수지 물속에 자맥질시켜 30여 년 전부터 후배 생산을 멈추었으니, 흰머리 너울거리는 소위 ‘손자 본 막내’신세를 면 할 길 없는 총동창회보다는, 동기 동창회의 매력이 더욱 감칠맛이 있다.
그래도 한 녀석이 깨친 바 있어서, 일찍 귀농하여 고향 발치의 언덕배기에 조그마한 산장을 닮은 둥지를 마련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동창모임장소가 되어오고 있다. 조용히 살고 싶다며 극구 싫어하는 녀석을 반 강제로 압력을(?) 행사하여, 넓은 홀을 갖추고 음향기기를 마련하여 그간의 회포를 풀기를 벌써 수년을 내리 하고 있다. 조금 특이하다면 일반 모임처럼 음식물 마련을 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아니라 모임에 참석 한 동창생 녀석들이 각자의 취미와 특기를 살려 준비하니 정말 정겹기가 한량없다.
고혈압과 지혈증으로 모두가 조심하지만, 그래도 옛 맛을 살려야 한다면서 돈(豚)선생의 바비큐를 준비하고 내친걸음에 염소와 닭 등을 희생의 재물로 운치를 돋우니 역시 초등동창이 좋기도 좋을시고...... 금요일이 주말인 동창생들의 고생을 위로해 줄라치면 ‘자연의 행복을 흔들지 말라’고 손 사례를 치니 토요일 저녁에 도착한 미안함보다 ‘그래 이것이 어릴 때 동무다’하고 홍진(紅塵)의 번잡함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
뭐. 허락된 외출이라고 ‘헤!’ 벌어진 여자애들 입이 다물 줄을 모르지만, 머슴애들 역시 제법 초로(初老)의 격을 발휘하면서 정담을 나누면서 사회 성공담을 늘어놓는다. 마이커잡이는 노래하고, 댄싱 중간에 조금씩 기울이는 술잔의 오르내림이 정말 천상의 즐거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마침 보름달이 휘영청 밝으니 이 맛을 도시살림이 어찌 알리요?. 이때 어느 녀석이 장식용으로 매달아 놓은 몇 장의 멍석을 덥석 마당에 펼쳐 놓으니 모두가 우루루 나와 아닌 밤중에 메아리가 온산을 흔들도록 노래하고 춤추었으니, 그날 산신령은 잠 못 들어 혼났을 것이다. 도시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칼부림하는 팍팍한 세상에 살면서 이런 호사가 그리 흔할까?
아무리 동창이라 해도 조금 더 출세한 듯한 녀석들의 자랑꺼리 무용담이 한 두 순배 돌고나서 모두가 땀을 식힐 즈음에 만석이가 갑자기 울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두 술 취하여 하는 ‘못된 술버릇’이라고 눈살을 찌 뿌렸다. 넋두리를 하는 모양새가 꼭 아름답게만 보이는 것 아니었고 특히 이렇게 흥분의 도가니가 끓어 넘치는 순간에 누군들 곱상으로 봐 줄 것인가?
모두가 조용히 들어가 잠자주기를 바라면서 차마 동창관계라서 험담을 감추고 입안에 내둘리고 있을 무렵 그 녀석이 벌떡 일어섰다. “너희가 모두 내 동무들이가?” 하는 발음이 너무나 정확하면서도 떨림이 처절하게 들려와서 그냥 술 취함으로 내몰기는 무엇인가 설명하기 어려웠다.
우리 촌놈들 중에 가장 부를 누리고 있는 녀석이며, 또 그 흔한 이혼이나 노인성 질환이 있다는 풍문이나 사회적 무리의 소문도 없던 녀석이라 순간 섬뜩함을 주는 자세였다.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머꼬? 들어나 보자.” “너희는 내 마음을 모른다. 또 영원히 혼자 품고 갈라 했는데 오늘 동창회가 너무 좋아서 그냥 있을 수가 없다.” 순간 역시 술 취한 것이라며 몇몇 동창생 녀석들은 돌아 서려는 찰라, “동무야,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 아들 녀석은 세월호로 먼저가고, 그 어린 손녀딸이 뺑소니로 하늘가면서 할애비를 울리는데, 며느리를 우째야 할지 모르는 내 마음을 너희가 알기나 하나......” “무시기라? 아이고 이 녀석아 그기 무신 말이고? 응?” 순간, 월하의 공동묘지보다 무서움으로 몸서리치면서도, 고교시절 배운 등신불의 얼굴을 그 동창생 얼굴에서 찾을 수 있었고, ‘말문이 닫힌다’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7호입력 : 2017년 04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