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9호입력 : 2017년 04월 25일
이지은 ‘손의 온도’ 대상 수상 참신하게 주제 살린 작품
‘손’ ‘바람’ ‘유리창’ 시제로 열린 제9회 문열공 매운당 이조년 선생 추모 전국백일장대회에서 산문부 이지은(대학일반부. 안동시)의 ‘손의 온도’가 장원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 심사위원들은 “전체적으로 참가자들의 시제 해석 폭이 넓어지고 그 방향이 국제화 되고 있다”면서 “특히 대상을 수상한 ‘손의 온도’는 여행체험을 바탕으로 손의 이미지를 독특한 시각으로 포착, 참신하고 주제를 잘 살린 작품이다”고 평가했다. 대학일반부 시부분 장원은 유은아(대전시), 시조부분은 차상은 박윤청(창원시), 산문부분 차상은 배혜경(고령군) 씨가 차지했다. 고등부 시부분 차상은 최재원(성심여고), 시조부분 차상은 박유진(서울 문영여고), 산문부분 장원은 조예서(고양예고) 학생이 차지했고, 중등부 시부분 차상은 이유빈(경대사대부중), 시조부분 차상은 이다겸(거치없는 우다다학교), 산문부분 장원은 도가은(다산중) 학생이 차지했다. 또 초등부 시부분 차상은 오건태(성산초), 시조부분 차상은 이은성(평리초), 산문부분 장원은 이다감(대구 강동초) 학생이 차지했다. 한편 고령문화원은 당초 지난 21일 시상식을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학생들의 중간고사 관계로 취소했다. 홍하은 기자
대상작 (대학일반부 - 산문) 손의 온도 이 지 은 온도가 기억나지 않는 손이 있다. 잡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촉각이 아닌 시각의 감각으로만 떠오르는 선명한 손들. 티베트의 라싸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어 네팔로 가는 길에서였다. 대여한 지프는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길을 달렸다. 사막으로 산과 마을을 만든다면 이런 모양일까 싶게 고요만이 겹겹이 쌓인 길이었다.
해가 질 무렵이면 우리는 낡은 동네에 차를 세우고 우물물을 길어 앙말을 빨았다. 거미줄이 레이스 천처럼 촘촘한 올을 드리우고 한 번도 닦은 적이 없는 게 분명한 창을 사족처럼 끼운 방에서 묵었다. 돌아갈 비행기 표를 끊어두지 않은 채 시작한 여행이었다. 하루하루 복대가 얇아지는 만큼 예민해지지 않으려면 작은 여백에라도 몸을 겹쳐야 했다.
티베트에서는 언제나 덜 익거나 입맛에 낯선 음식을 먹었다. 공기마저 설익은 밥처럼 팍팍해서 걸을 때마다 들숨을 오래 씹어야 했다. 무엇을 먹어도 허기가 졌다. 그러다가 솜씨 좋은 화교가 요리하는 식당을 찾아냈다. 숙소 귀퉁이에 테이블 너덧 개만이 놓인 낡은 식당이었지만 오랜만에 복대를 풀고 뺨에 기름이 돌겠다 싶을 정도로 호평을 받는 곳이었다.
우리는 마지막 만찬인 양 욕심을 내어 눈에 보이는 대로 멘을 가리켰고 고기반찬과 볶음밥, 나물볶음 등이 나무 식탁을 가득 채웠다. 발효된 전통술까지 시키고 나니 제법 그동안의 가난과 피로를 보상 받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원래 부자였던 사람들처럼 크게 건배를 외치고 소리 내어 웃었다.
한참 즐겁게 식탐을 누리던 그때, 우리가 앉은 테이블 건너편에서 손바닥이 공중에 붙은 채로 누군가가 빤히 이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백내장이 막 시작된 노인의 눈처럼 부옇게 바랜 통유리가 있었다. 식당이라고는 해도 전기를 아끼느라 조명이 없다시피 해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햇빛과 초저녁의 어둠이 내부에 엉기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깥을 신경 쓰지 못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기름지고 보드라운 요리들 때문에 주변은 모두 사각지대이기도 했다. 금세 유리벽에 다닥다닥, 손들이 늘어났다. 마치 바디페인팅 수업을 마치고 유리에 손을 닦으러 온 사람들처럼 손들의 색깔이 거뭇했다. 죄다 아이들이었다. 유리는 맑지 못해서 아이들은 있는 힘껏 손바닥을 펼칙 눈을 둥그렇게 떴다. 마치 눈에 그릇들을 담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선명하게 보면 선명하게 먹을 수 있을 것처럼. 전위예술을 보는 기분으로 그 작은 빨판 같은 손바닥들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리고 있는 저녁이었다. 당연한 듯이 가로등이 없는 삭막한 골목길에서, 크고 작은 아이들이 모두 식당의 벽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남은 음식이 고스란히 담긴 그릇을 든 채 그들에게 가지 않았다. 가이드이자 운전사였던 사내가 미리 주의를 주었던 탓이었다. 해가 지면 밖은 위험하다고 했다. 이곳에는 변변한 병원도 없고 치안도 좋지 않다. 여행자는 모두 걸어 다니는 지갑으로 보일 뿐이며 한 아이를 돕는 순간 아이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많은 손바닥들을 외면해 버렸다. 눈보다 더 오래도록, 뚜렷하게 말을 걸고 있었던 작은 손자국들로부터 종종걸음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아침 일찍 국경지역으로 떠나가는 우리에게 가장 다정하게 흔들어주던 것이 그 손들이었다. 남아서 더 못 먹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 숟갈의 마음도 건네지 못하고 들개떼를 보듯이 아이들을 보았던 내게, 그저 잘 가라는 맑은 인사를 보내던 손, 그 어린 손들. 빙어의 눈보다 더 깨끗한 결을 가진 마음에 끝내 손을 맞대어주지도 못한 내가, 자아실현의 낭만 따위를 찾아 먼 길을 떠나고 있었다. 손과 손 사이가 국경보다 멀었던 줄도 모르고 텅 빈 가슴을 감추며…….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19호입력 : 2017년 04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