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20호입력 : 2017년 05월 02일
보은(報恩)
때는 조선왕조 제14대왕 선조대왕시대에 당시 중국의 사신인 백 통사와 홍 통사에 관한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백 통사는 사신을 여러 번 다니면서 중국에 여관을 정해놓고 돈을 빌려 중국의 금은보화를 사드려 국내에 판매해 큰 부자가 되어 있었다.
한번은 백 통사와 홍 통사가 같이 사신을 가게 됐는데 중국에 들어가 백 통사가 지정한 여관에 여장을 풀고, 이튿날 백 통사가 볼 일을 보는 중 홍 통사는 평생 처음 간 중국 북경의 홍등가를 지나가는데 중심가에 양귀비보다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 하룻밤 자고 가는데 1천냥이라고 방이 붙어있었다.
홍 통사는 평생 처음 보는 그 아름다움에 그만 정신을 잊어버렸다. 홍 통사는 끓어오르는 열정을 참지 못하고 주머니를 확인하니 국가에서 주는 여비와 비상금을 합해 1천냥이있었다, 그만 눈을 딱 감고 1천냥을 가지고 그 연인을 찾았다.
그 여인 앞에 1천냥을 내어놓고 여인을 끌어안으려고 하니 그 여인은 슬피 울고 있었다. 홍 통사는 사연을 몰라 왜 우느냐고 하니 그 여인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아버님께서 나라에 대신으로 계시는데 공금을 본의 아니게 잘못 취급해 3천냥의 국고손실을 끼쳐는 데, 가산을 다 팔아서 2천냥을 갚고 나머지 1천냥을 갚지 못해 아버님께서 지금 형무소에 계시는데 내 몸을 팔아서 1천냥을 갚고 아버님을 구하고자 하는데 오늘 1천냥을 가져온 손님이 오셨으니 슬프고 기뻐서 운다고 했다.
홍 통사는 몸을 팔아서 아버님을 구하고자 하는 효심에 감복해 1천냥을 그 여인에게 주고 나오려는 데 그 연인을 홍 통사를 붙들고 이름 석 자를 가르쳐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그저 홍 통사라고만 하고 뒤돌아왔다. 백 통사는 중국의 금은보화를 사 가지고 돌아와 큰 부자가 됐고, 홍 통사는 사신에서 파직됐다.
그 후 몇 년 뒤 임진애란이 일어났는데 중국에 원병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내게 됐는데 이번에는 백 통사가 탈락하고 중국말에 능통한 홍 통사가 다시 사신에 발탁됐다. 백 통사는 사신을 떠나는 홍 통사에게 중국이 가거든 그 여관에 갚을 빚이 있는데 내 안부를 물으면 염병이 나서 죽었다고만 전해달라고 했다.
홍 통사는 백 통사의 부탁을 받고 중국으로 떠났는데 대궐에 도착하니 고관대신 내외가 나와서 정중히 국빈의 예우로 맞았다. 대궐 안방에 모셔놓고 대신 내외는 큰 절로써 인사를 올렸다. 어안이 벙벙해 사연을 물으니, 그 대신은 중국의 국방장관이고 그 연인은 국방부장관의 부인인데 몇 년 전 홍 통사가 중국에 통사로 왔을 때 아버지 목숨을 구하고자 1천냥에 몸을 팔고자하는 그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홍 통사가 주고 간 1천냥으로 아버지를 구하고 중국의 국방장관과 결혼했던 것이다.
아~이 무슨 인연일까? 홍 통사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지금 조선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원병을 요청했다. 중국의 국방부장관은 어전에 고하여 많은 원병을 허락받아 홍 통사에게 인계했다.
홍 통사는 원병을 이끌고 돌아오는 길에 백 통사의 부탁대로 여관에 갔고, 여관주인이 백 통사의 안부를 묻기에 뱍 통사는 염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여관주인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위로금을 전해달라고 했다. 원병을 이끌고 돌아와 임진왜란을 평정하고, 백 통사를 찾아가니 백 통사는 참으로 염병으로 죽었다.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爲善者는 天報之以福하고 爲不善者는 天報之以禍니라. 풀이하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려 보답하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화를 내려 보답한다는 뜻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만인이여 우리 다 같이 선을 행하십시다. 필자는 오늘의 위정자에 고합니다. 선정을 베푸시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한문과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도록 문교정책을 수정하기 바랍니다.
-풍수지도사·명리사·수맥탐사전문가 이근우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20호입력 : 2017년 05월 0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