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달구어 질 꼭 이맘때에는 나의 앵두 이파리가 파르르 떨며 녹색 빛 노래를 무한히도 뱉어 내곤 하였다. 키가 낮아서 돌담 너머의 세상을 겨우 턱걸이로 내다보며 살아가지만, 지난해 어설프게 나와서 미처 아직 귀가하지 못한 허수아비의 낡은 옷자락이 돌고 도는 유행에 못 미처 세상사의 수레자국에 역 주행하는 것임을 어찌 깊이야 알겠냐마는 그래도 현진건의 [빈처(貧妻)]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 가난한 글쟁이의 아내나 그 웃음과 보조를 맞추려는 더욱 어색한 처형의 미소가 천칭 저울에서 꼭 같이 평형을 이루는 세상이 되기를 기도하는 바람개비가 현실임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이가.
봄 추수 감사절에 교회의 빛나는 대강당의 성탁(聖卓)위에 그것도 금빛 색조의 에나멜 코팅을 곱게 한 자랑스런 첫 수확을 표하는 곳이 아니라면, 그 잘난 계약 재배로 농작인은 아예 한 톨도 만져보지 못하고 전량 매출해야 하는 정말 멋대가리 없는 풍속도의 한 귀퉁이를 자리 매김 하는 보리 이삭 한 줄기를 살포시 입맞춤 해 보고 싶은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라고 외치듯 나 혼자 초록 물감에 약간의 노란 병아리색을 실어서 후우하고 불어서 그리고 싶다. 정말.
세상은 정말로 마음도 좋다. 아니 정말 바보처럼 저 혼자 뭐가 그리 바쁜지 잘도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세상을 만나지 못한 좀비 녀석이 약간의 재수 옴 붙은 인간의 그림자를 따라 깡충깡충 따라가듯 그냥 그렇게 세월은 이렇게 밝은 대낮에 뭐가 좋다고 저렇게 무서운 어둠의 그곳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을까?
누구나 그곳을 가야 한다지만 그 지옥의 터널이라고 칭하는 대입 입시시험조차 정해진 날자가 있고, 나이 서른도 못 되어도 ‘영감’ 소리를 듣게 되는 검.판사가 되는 시험, 소위 고등고시 시험도 날짜를 정하여 놓고 실시하건만 왜? 세월의 등줄기를 타고 내 달려야 하는 그곳은 정해진 시점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에 버금가는 깨달음이 있을 듯한 그님들도 방문 틈새로 들어오는 실바람에 꺼져 가는 촛불처럼 파르라니 후회하며 가야 한단 말이던가?
누군가는 잘 모르지만 여하튼 어떤 절대 권력을 지닌 그 존재가 정하여 준 길이라 할지라도, 패자 부활전에서 기사회생하여 힘차게 울려보는 ‘골든벨 장학생’처럼 다시 한번의 기회라도 줄 수 있으련만, 세월은 재도전의 기회를 영원히 주지 않는 것 같다.
일전에 농장에서 하루 품팔이 일 해 보았다. 농장이라고 해도, 밀레의 만종(晩鐘)에나 있을 듯한 평온감이 감돌며 감사가 넘치는 분위기가 아니라, 수 만평이나 되는 골짜기에 염소와 닭, 개, 흰 공작, 여기에다 까치, 까마귀 비둘기 또 이름 모를 수많은 산새들이 뒤 엉켜 있는 듯한 분위기가 처음에는 너무나 혼란스런 분위기라 어리둥절하였다. 점차 눈과 귀와 코가 익숙함이 농익어 갈 즈음에, 이 “농장의 주인은 누굴까?”라는 화두(話頭)가 떠올랐다.
사람세계에서는 등기소에 올라있는 그 사람이 주인일 것이다. 물론 등기소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임대차란 제도에 의하여 얼마의 댓가를 지불하고 농장을 차린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과 만여 평 정도의 골짜기의 그 농장에는 수 십 아니 수 백 종의 식물들이 제 각각의 형편에 따라 자라고 있음을 볼 때 저들이 주인인 듯도 하였고, 소위 가금류(家禽類)라 분류되어진 집짐승들도 살아가고 있었지만, 누가 청(請)하지도 않았지만 집짐승들에게 제공한 양질의 먹이를 아무런 제약도 없이 습취하고 유유히 살아가고 있는 뭇 산새들이 주인이라 하면 틀린 것일까?
인간의 역사보다 오히려 길다는 쥐(鼠)들도 버젓이 뭇 짐승들 틈에서 자기 몫 인양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지만 먹이가 지천이라서 그런지 고양이도 쥐에게 관심이 없는 듯이 봄볕에 졸린 듯이 두 눈을 내리 감고 미동도 않는다. 마침 갓 깨어 난 듯이 걸음이 어색하지만 힘차게 쫑쫑 거리면서 어미 닭의 뒤를 따라 돌아다니는 병아리는 정말 귀엽다. 어미가 두 발로 단단한 흙덩이를 파 헤쳐주면서 부리로 쪼아 먹는 시늉을 하면 그 어린 병아리도 연신 부리질을 해 되고 있다.
병아리가 상당히 큰 지렁이를 보고는 뒤로 물러나지만, 곧장 달려온 어미닭이 그 지렁이를 토막을 내고 또 토막을 내면서 어린 병아리가 먹기를 기다려 주고 있음을 보면서 잠시 세상이란 녀석이 빨리도 가고 있음을 잊을 만 하였다.
그 순간, 까마귀란 녀석이 쏜 살과 같이 저 멀리 솔가지 위에서 내려와서 그 귀여운 병아리를 낚아 채 발톱으로 움켜잡고 솟구쳐 올라가지만 어미 닭은 잠시 “꼬꼬댁” 하면서 두 번 정도 뱅뱅이를 하더니 슬픔을 잊어버린 듯 태연히 남은 놈들을 돌보고 있다. 무한의 자연 앞에, 사람이 주인이라고 하려면, 또 세월이란 친구를 멈추게 하려면 저 병아리가 간 곳을 알고 되찾아 올 수 있어야 할 텐데, 병아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수필가 한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