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25호입력 : 2017년 06월 13일
ⓒ 고령군민신문
여기까지 따라 와서 버려진 유도화
젊은이를 칭하여 꽃다운 나이라 한다. [護國의 달]이라는 별칭으로 우리네의 가슴을 또 그렇게 촉촉이 슬픔을 머금게 하는 염천의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이 왔나 보다. 누군가는 추운 겨울나기가 힘겨워서 차라리 ‘여름이 낳다.’ 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여름 나긴들 또 그렇게 눅눅할까?
통상적인 말로는 꽃피고 새우는 봄철에 이사를 하는 것이라 하곤 한다. 봄철에 이사하는 이유는 학업이나 새로 구한 직장 관련으로 하는 이사, 글쎄? 촌구석 글쟁이 생각에는 그나마 희망이라는 이미지가 어렴풋하게 포장되어서 위안을 주던 것이라는 약간 생뚱스런 생각을 해 본다.
물론 구한말이나 왜정치하의 선배 글쟁이들은 봄철의 이사를 죽지 못해 생명을 이어 갈려는 마지막 수단으로 처갓집 가까이에 보잘 것 없는 둥지를 트는 모습을 그려 놓기도 하였지만, 최첨단의 과학 문명을 누리는 지금은 그래도 봄철 이사는 약간의 차이일망정 양성적이라는 고집을 살짝 부려 보고 싶다.
늦은 가을의 햇살을 받으면서 한줌씩 뿌리고 묻으면서 파종하여 봄에 추수하는 두해살이 작물이 많이도 있지만, 춘경추수(春耕秋收)라는 말처럼 보편적인 생각을 하면 가을철의 이사(移徙)는 아무래도 조금 쓸쓸하고 실패나 고난 등의 사념을 몰고 오는 것이 거리 별난 것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줄줄 번져나는 여름에 이사를 오는 저이들은 무슨 사연을 가슴에 품고 있을까?
시골 촌구석에서도 비교적 서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이곳의 좁디좁은 원룸 형태인 단칸방 모양의 이곳 아파트에서 처절히 절약하고 노력하여 좀 더 넓고 편리한 곳으로 이사를 가는 저이들은 그나마 잘 되었을 것이란 막연한 희망이라도 덧얹어 주련만, 차라리 그곳에서 버릴 것 버리고 오지 이곳까지 고이 모셔 와서 방이 좁아 들어 놓지 못하여 버려지는 살림살이들을 보노라면 주제넘게도 가슴 한편이 찌르르 아파온다.
지난번 대가야 장날만 해도 그렇다. 아주 세련된 모습을 단아한 옷차림새로 표현한 꼭 내 또래는 되어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나의 둥지 다음다음 칸으로 이사를 오고 있었다. 원래 숫컷들의 이사라야 간단하고 여성들은 매우 많은 숫자의 작은 상자들이 따름이 보통이지만, 요즘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는 듯이 파란 상자가 상당히 많은 그 여인의 이삿짐은 과연 저 짐들이 다 들어가기나 할라나? 하는 걱정을 자아내게 할 정도 로 많았다. 예전에는 한 동네로 누군가 이사를 온다 하면 모두가 우루루 나서서 짐도 날라다 주고 짐 정리조차 해 주곤 하였었다.
요즘엔 시간도 각자가 바쁜 관계도 있겠지만 행여 잘못하여 고가(高價)의 소장품이라도 파손하는 날이면 상호관의 어색함이 엄청 날 것이며, 귀금속이라도 분실되었다는 말이 나오면 여간 어려운 상항이 연출될 위험성이 있으니, 그저 이사떡이라 하여 건네는 팥고물 잘 다져진 시루떡 두어장을 고이 받아먹고 약간의 답례 인사말 하는 정도면 아주 상당히 좋은 이웃으로 살아 갈 전초전을 치룬 셈이 되는 것이다.
이 아름답게 잘 다듬어진 여인이 이사를 온 그날 저녁부터 왠 남자 손님이 그렇게 많은지, 고서(古書) 몇 줄 읽을 요량으로 옥편을 뒤적이는 필자(筆者)의 침침한 눈(目)보다 오히려 귀를 한 동안 괴롭히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착하고 선한 이웃을 만나는 것도 다 내 복이려니 .’하고 참아 넘어 갔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검찰청에서 압수수사물 운반용 상자처럼 생긴 파란색의 상자들이 규격 쓰레기봉투도 아닌 상자채로 버려지고 있으니 경비 할아버지들의 항의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학명을 Nerium indicum인 협죽도(夾竹桃) 화분 한 개였는데, 지방에서는 유도화(柳挑花)라고도 하는 버려진 화초에 관심이 갔다.
협죽도는 원산지가 인도이며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로 [늘푸른 o모양이고 꽃은 복숭아꽃을 닮았으며, 대기 오염을 정화하는 능력이 탁월하나 ‘라신’이라는 독성분을 지니고 있어서, 옛날 궁중에서 임금의 총애를 서로 얻고자 처절한 시샘 싸움에 자주 사용되기도 하였고, 죄인에게 내리는 사약에도 일부 사용되었다는 전래담(傳來談)이 있는데, 이 여인은 벌 나비도 가까이 하지 않는 이 꽃을 왜? 실내에 두고 가꾸어 왔을까?
물론 공기정화력이 탁월하여 무념으로 가까이 하였을 수도 있겠으나, 이제는 먼 길을 돌아 거울 앞에서 뒤안길을 되새김질 할 나이도 저 멀리로 접어두고 손주재롱에 파묻혀서 즐거운 비명을 미소 지를 세월의 그림자를 제쳐두고 , 산장의 여인인양 나 홀로 이웃이 된 저 여인의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젊은이가 아닌 초로의 또래의 주인공을 꽃다운 여인이라 불러드릴까?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25호입력 : 2017년 06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