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26호입력 : 2017년 0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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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바람 불거든
직업도 아닌 직업으로 산에 오르면서, ‘이 추위가 언제 끝이 나려나?’하고 누군가 모를 불특정 다수도 아닌 나의 못난 일그러진 자화상 가슴 한편을 다독이는 소리로 투덜거림을 호주머니 속에 묻어 둔 때가 어제 같은데, 지랄 발광하는 날씨는 저수지 바닥을 홀라당 노출시켜 놓고도 모자라 거북이 등짝 모양으로 지 혼자 칼질을 하고 있다.
나팔꽃이야 본디부터 아침에 잠간 베시시 노래하면서 웃다가 이파리 속에 고개를 파묻고 잠잠한 것이 일상의 일이였지만, 햇볕을 좋아하다 못해 짝사랑으로 몸살을 앓는 해바라기조차 고개를 푹 수구린 모양이 저렇게 처량해 보이는데, 뜨거운 땅 바닥에 바짝 붙어있는 채송화는 어릴 때 독감 질환을 앓으면서 두 다리 뻗고 댕길 힘조차 없던 나의 여린 꿈 조각인양 도대체가 일어나 춤출 기미가 없다.
그나마 머리들이 좋아서 과학 영농으로 벼를 비롯한 특수작물 농업을 하는 이들은 온 들판을 스프링클러라는 요상한 것을 앞세워 놓고 물 한 모금씩을 흩어 뿌리면서 농가월령가를 새롭게들 쓰고 있지만, 우직함 보다는 게으름에 가까운 나의 일기장은 ‘산타는 일’을 끝으로 도무지 진척은커녕 미동도 없이 또 그렇게 나이살의 증표인 주름살만 더 할 기색이 역력하다. 속담에 “처음 서방질이 어렵지 내 논 기생가슴 남부끄러운 줄 모른다.”라고 하였듯이 벌써 석순(三旬)이 지나 월력이 한 장 넘어가고 있건만, 초등학생 방학 숙제 계획 그래프조차도 그리지 않으면서 부끄러움도 모르는 양 배 깔고 드러누워 배밀이로 방바닥 청소만 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에어콘(air conditioner)없는 원룸은 덥기가 여간 아닌 시세말로 ‘장난’ 아닌데, 증기기관을 언급함은 돈키호테짓이지만 우리나라에도 처음에는 증기기관으로 내 달리던 목탄열차가 있었단다.
筆者는 전후세대라서 이야기로 전해 들었지만, 가만히 있어도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그 고귀한 응어리를 흘리면서 석탄을 활활 타오르는 아궁이에 삽질로 들이 붇던 그이들은 인부였을까? 아니면 노예였을까? 노예였다면 생명연장이 결과물이요 소득이었을 것이고, 인부 즉 노동자였다면 새로운 세계로의 전진을 하여 또 다른 사회의 선각자로 살다 갔을 것이다.
일전에 모내기 풍속도를 수필로 그려내면서, 들밥도 없고 육자배기 노동요 한 자락도 없이 무정한 트랙터 한 대가 들판의 색감을 바꾸어 감을 춘원선생의 소년의 비애에 비춰서 감정을 추슬러 본적이 있었다. 동학혁명이나 갑오경장 등등의 급변하는 세태 흐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일한 자세의 생활상 주인공 역할을 자처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세계의 노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소위 선각자들은 그렇게 무섭게 억눌렸던 사회 규범들의 옥쇄를 스스로 벗어 던지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면서 자신과 이웃의 마당물 노릇을 톡톡히 하였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아직 번데기신세를 못 벗어난 부끄러움을 언제 알런가? 시골 글쟁이는.
추억의 뒷골목을 더듬어 보면, 마을 앞 수백년 된 느티나무 그늘에는 앉는 순서가 있었던 같다. 가장 시원한 그늘과 통풍이 보장된 그곳은 촌장격인 할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이 앉으셨고 점차로 가장자리로 나서면서 나름으로 중요인물 순으로 앉아서 이야기를 하곤 했던 모습이 기억된다. 지금은 시골 어느 마을이나 회관이나 경로당 등으로 추위나 더위를 맘껏 조절하면서 지낼 수 있으니 앞서의 아련한 풍속도를 볼 가능성은 없어진 듯하다.
모두가 현 처지의 모양새를 벗어 날 돌파구를 찾기 위하여 최선책을 찾고 하다못해 차선책이라도 찾을 양으로 헤매다 보니 이렇게 여러 연령층이 한자리 모여서 자연스럽게 전통과 풍습이 전수되어 질 기회가 소실된 것 같다.
그 당시는 어른이라 하여 유경험자, 지식인, 옳은 길을 살아가는 사람, 모범된 사람 등으로 상호인정하면서 예우를 해 드렸고, 더위를 잊을 만큼 계셨다고 생각되어지면 자리를 슬며시 떠나주면서 모두의 만족을 나누어 가졌던 것 같은데, 요즘은 고사리 채취 한답시고 뿌리까지 가져다가 자기 집안 뜰에 심는 자기 중심주위가 되면서, 시원한 그늘을 물려주고 일찍 가시기를 기다리는 후인(後人)은 없고 아예 느티나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에 에어콘을 설치하는 시대이니 생각 할 점이 많아 졌다.
능률주위 실적주위가 보다 높은 호응도를 얻으면서, 약 반세기동안 육십 어른이 팔십 어른으로 어른의 세월은 길어졌지만 최첨단의 신문물에 관한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기에 급급한 처지이고, 젊은이들은 젊은이 나름으로 현실의 세계화의 경쟁력 함양에 몰입해야 할 처지이다 보니 경험주의에 의한 지식 획득보다 간접경험에 의한 성숙을 더욱 관심을 두는 것이 어쩌면 자연현상인 것 같다.
모르면 모를까 이렇게 모두가 잘 인식을 하고 있으면서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번 가을 자락에 시원한 바람이 불거든 느티나무 그늘을 찾아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보자꾸나. -수필가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26호입력 : 2017년 0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