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41호입력 : 2017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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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흐르는 전선을 여행하며(2)
이토록 열과 성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 높은 저이의 사랑받기 충분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기에 달님은 오늘도 태초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저토록 밝은 모습으로 웃고 계신다. 젊은 시절 산야를 닮은 색조로 만든 즉 위장하기 쉬운 옷을 입고 살상이 가능한 무서운 병기로 무장하고 부모형제가 편히 지낼 수 있게 온 밤을 날밤으로 지새운 시절이 있었다.
엄청 길고 긴 명절연휴를 서생(書生)이랍시고 서실에만 들어앉아 있는 것이 좀 쑤시는 모양새이며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들며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라고 밀쳐 두기에는 시세말로 2%가 부족할 듯하여, 이번 중추절에는 가벼운 등짐하나 준비하여 길을 나서 보았다.
한 반도의 중간쯤 다시 설명하면 달나라에서 쉼 없이 절구질하는 토끼의 요염한 허리춤 정도가 되는 동부전선의 한 지점인 철원(鐵原)을 여행하면서, 기껏 높여 놓은 열기를 낭비한다고 곱지 않은 눈총을 발산하는 주인장의 투정을 안주삼아 귀뚜리는 잠자는 이 시간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초서고 있는 초병의 눈가에 번져있는 물기를, 충정과 그리움이 뒤범벅된 죽은 소나무 뿌리의 온기를 기억하는 호박(琥珀)처럼 노래하고 싶은 나그네의 마음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아무리 깊은 산골이라 하여도 새벽이 깊을수록 서광(曙光)의 배려로 산봉우리의 테두리를 아련히 그려내면서 초병의 고달픔을 위로하며 희망을 내려 주시기도 하련만 저토록 허허털털로 지내시는 넓은 마음의 한 가위 달님은 아예 한줄기 서광으로 마음 졸면서 긴장하지 말고 호손(Nathanier Hawthorne)의 큰 바위 얼굴로 힘차게 살아가라시며, 태양이 미처 하루를 갈무리 못한 어제의 늦은 오후부터 아직껏 양동이로 듬뿍듬뿍 퍼주고 있다.
추석 연휴를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인파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지만, 그래도 전국의 도로들은 ‘민족의 대 이동’이라 하여 정체로 몸살을 앓을듯하여, 글쟁이는 이참에 긴 연휴를 조용한 산야를 누벼보기로 작정하고 강원도 산야를 밟아보고 있다.
무엇이 급하여 그리도 일찍 저 세상으로 갔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입영기념식’이라 하여 부모형제는 물론 사랑하는 연인들의 열열한 환송을 받으면서 연병장 옆에 마련된 고급의 의자에 앉아 입영하는 장정보다 오히려 더 가슴 저려하는 가족들에게 큰절하면서 당당히 군 복무를 시작하더라만, 기억 속에만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는 퇴색된 筆子의 군 생활의 시작은 두려움과 통제된 분위였다.
추억속의 멀고먼 옛날인 그 시절에 논산 훈련소 정문을 들어가면서 인솔하는 기관병들의 눈초리를 피해서 옆에서 나와 같이 두려워하고 있는 친구, 즉 대학에서 같은 부분을 공부하여 두 사람 다 의무(醫務) 분야에서 근무 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던 전우와의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친구는 군의학교라 하는 군 전문 교육을 받지 못하여 일반 보병으로 근무하였었고, 筆子는 운이 좋아 교육받고 군 위생병으로 근무하고 전역을 하였다. 다시 입영 당시 논산 훈련소 입구를 들어서면서 우리 두 사람은, 두 손을 꼬오옥 쥐면서 ‘우리 다치거나 죽지 말고 무사히 전역하여 고향 돌아가자.’ 하는 무언(無言)의 약속을 하였었는데 무정한 그 친구 아니 그 전우(戰友)는 서른 달의 그 짧은 시간을 못 참고 언덕을 타고 오르던 602 트럭과 함께 굴러 떨어져서 사병신분으로 엄청난 계급인 대령의 거수경례를 받으며 나의 곁을 떠나갔었다.
필부(匹夫)로 살아가는 필자야 이제 쉽게 갈 수 없는 국립묘지 즉 현충원이지만 그 전우는 국민의 의무인 기본적인 기간의 군 생활도 마치기 전에 선착순으로 현충원에 가서 잠을 자고 있다. 요즘 사회는 서두의 말씀처럼 촉박한 시간 속에 살다보니까 명절에도 온 가족이 모여서 몇일 간 즐겁게 지내기가 어렵다고 말씀 올렸지만, 이 전우는 수십 년을 어머님의 술잔만을 명절에 받아 마시었였다.
그 어머님마저 돌아가신 지금 ‘어느 누가 술 한 잔 올릴까?’ 하는 두려움이랄까 안타까움으로 제 앞 가름도 못하는 筆者가 벌써 수년을 술잔을 올리다가 그나마 금년은 “ 야! 비급하게 약속을 못 지키고 앞서 간 친구야 지금 행복하냐? 난 점차로 용기가 줄어들어 이제 오히려 너의 위로를 받고 싶을 정도로 허전한 마음이란다.”라고 넋두리 하고 싶어서 초청장 하나 없이 나 홀로 그 시절의 군부대 근처를 무겁게 여행하다가 달빛을 맞고 있다.
현충원을 찾아 소주한잔 부어주는 것이 그나마 위로랍시고 십여 년을 해 왔지만, 오히려 바닷물을 마신 것처럼 허전하고 텅텅 비워진 가슴의 갈급함은 더하여져 이렇게 그때 그 자리에 와서 아들놈의 벗도 덜 되는 초병(哨兵)의 M16총에 장착된 칼끝에 맺히는 이슬을 사용하여 무정하게 떠나간 그 친구를 그리는 먹물로 사용하고 있다.
요즘 일가나 친척집이라고 방문하여 몇일 밤을 지내면 患憂거나 신용불량자인가로 생각한다는데, 장가도 못가 본 이 전우는 철이 들었는지 벌써 두 번째 날의 달밤을 맞은 철없는 옛날 전우를 즐겁게 해 줄 요량으로 풀벌레도 보내주고, 계곡 물 소리도 들려주면서 筆子의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있어서 ‘아예 이곳을 안식처로 삼을까?’ 하고 생각해 보지만, ‘자네가 아무리 친구지만 잠시는 용납되겠지만 긴 세월은 곤란하다.’며 손 사레를 치는 삼십년전의 친구의 모습이 오히려 이 철없는 전우가 고생 할 까 걱정을 하는듯하여 귀향 차비를 하는데, 역시나 무심한 달빛은 아무 말 없이 나그네의 옷깃만 매 만져 주고 있다.
전우야! 아니 동무야 내가 손전화로 수백 장도 넘게 자네가 잠시 머물던 戰場 주변 산야를 담아놓았으니 이 메일(E-mail) 주소를 보내주시게. 보내 드리겠네.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41호입력 : 2017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