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오장(伍長) 우리의 자랑. 그대는 조선 경기도 개성사람 인(印)씨의 둘째 아들 스물한 살 먹은 사내 마쓰이 히데오! 그대는 우리의 가미가제 특별공격대원 귀국대원 귀국대원의 푸른 영혼은 살아서 벌써 우리에게로 왔느니 우리 숨 쉬는 이 나라의 하늘 위에 조용히 조용히 돌아왔느니 우리의 동포들이 밤과 낮으로 정성껏 만들어 보낸 비행기 한 채에 그대 몸을 실어 날았다간 내리는 곳 쪼각쪼각 부서지는 산더미 같은 미국 군함! 수백척의 비행기와 대포와 폭팔탄과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 같은 병정을 싣고 우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원수 영미(英米)의 항공모함을 그대 몸뚱이로 내려쳐서 깨었는가? 깨뜨리며 깨뜨리며 자네도 깨졌는가 ㅡㅡㅡㅡ 장하도다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ㅡ서정주의 <오장(伍長)>마쓰이 송가(頌歌)>부분
다쓰시로 시즈오(達城靜雄) 성과 이름을 바꾸어 일본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을<성전(聖戰)>이라면서 숱한 글들을 써서 학병 지원. 보국대 지원. 정신대 지원 등을 독려하며 일제아래 400만의 동포가 죽어갔던 그 시절에 '문명(文名)'을 드날렸다.
윤동주 시인과 이육사 시인이 옥사를 하고 한용운 시인이 영양실조로 죽어 가던 그 참혹한 시절에 서정주는 일본이 '수백년은 갈 줄 알고'천황폐하를 찬양했다는 것이다. 그 무렵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군 장교 다카기 마사오(또는 오카모도 미노루)는 몹씨도 침울한 성격이어서 거의 말도 없이 지내다가 독립군 토벌 명령만 떨어지면 아연 활기를 띠고 용감 무쌍하게 출동을 하는 것을 보고 일본군 동료들은 "저놈 미친놈 아닌가?
제 동족의 독립군을 토벌하러 가는데 저렇게 신이 나서 날뛰다니....!"라 했다는 기록도 있지만 그 용감했던 장교가 대한민국의 장군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이 슬픈 역사 속에서 서정주가 한국 최대 최고시인이라 한들........잠시나마 활동을 했던ㅡ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체포되어 법정에 섰던 3.1운동 주모자로 변절했던 최린(崔麟)이 "나는 재판을 받을 자격도 없다.
저 광화문 네거리에서 총살을 시켜달라"했다던 사실은 사뭇 감동적이지만 자신의 친일행위에 대해 미당은 "적어도 일본이 수백년은 갈 줄 알았다"..는 솔직한(?)말 외에 단 한마디 반성이나 사과도 없었다.서정주는 민족민중문학 진영을 향하여 ".............민중이라는 말은 말하자면 사회주의적 무산계급혁명을 이 나라에서 달성하여 공산주의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던 말로 알고 있는데.........
"<문학정신; 1987년 1월호 권두언>이것은 언어폭력이지 도무지 시인의 언사가 아니다. 그는 일제시대에는 "독립이라는 가당찮은...꿈이나 꾼다"며 동족을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매도하던 그 친일인사들의 논지로 민족민중문학을 매도하는 것이다.
전두환의 4.13호헌 조치를 <위대한 구국의 결단>이라며 지지성명을 내던 '순수문학'을 추구한다는 문학단체나 서정주의 '순수시'의 의미는 무었일까? 수많은 고향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정주의 고향에는 폐교를 개조하여 서정주 시문학관이 들어섰다. 그나마 그의 '부끄럽기 짝이 없는' 그의 '기억에서는 없을'시들도 몇편 전시되었다지만 허탈감과 배신감은 어찌할 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