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46호입력 : 201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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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배 아프다 ! 이모야.
“이모야? 이모야 배 아프다.“ 어린 소년은 ‘엄마!’란 말 다음으로 가장 먼저 배운 말이, 아니 자기 생각의 의식을 가지고 표현한 첫 말이자 낯부끄러운 거짓말이 이 말이었다. 지금은 교회 종소리도 아날로그(Analog)에서 디지털(Digital)로 바뀐 것이 누런 구렁이가 담 넘듯 변화되어 아련한 추억을 잃어 버렸다.
동백기름으로 반지르르하고, 어슴푸레 흔적만 남은 듯한 달빛조차 반사되어 반짝이게 만들어 흡사 안개꽃다발로 착각하게 만들던 어머님의 단장 머리. 햇님이 오시려면 아직도 먼 그야말로 여명(黎明)의 시간에 ‘용왕 먹이기’라는 가족들의 무사태평을 빌고 축원하는 기도의 시간에 임하실 때도, 기회인지? 강요인지? 여린 손목이 아프도록 잡고 동행하시곤 하셨다. 엄마가.
장날이나 잔치에 가실 때만 입으시던 뽀얗고 아름다웠던 어머님의 치마 자락 스치는 소리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왼손으로 잡은 음식 광주리가 아닌, 오른손에 매달려가는 소년의 가슴에 사푼히 내려앉는 나비처럼 고운 음악으로 쌓여 왔었다. 사각사각 나는 소리가 낙엽 밟는 소리보다 조금 약하게 들려오는 날도 있었다. 소년이 잠을 더 자고 싶었거나 머리가 조금 아플 때였음을, 소년보다 엄마가 먼저 아시고 “우리 아가야 가기 싫은가 보구나? 엄마 혼자 갈까?” 하시면 화들짝 놀라서 “아니, 아니에요. 보세요.” 하면서 서너 걸음 정도를 폴짝이며 내달리곤 했었다.
그러나 엄마가 어머니로 변신한 햇살들이 비치는 시간이면 없었다. 아니 안계셨다. 그렇게 아름답고 사각사각 소리 내던 옷은 벗어지고, 사방팔방으로 제 각각의 방향으로 구겨져 주름지고 찢어진 곳이 전혀 다른 색깔의 조각들로 모자이크처럼 덧 꿰매어진 검정 치마가, 헐렁하고 옻칠보다 못한 ‘감물’이나 ‘칡물’로 채색되어진 요즘의 몸빼바지 비슷한 속바지위에 걸쳐지고, 앞섶이 또로로 말려 올라간 누런 삼베가 아니라 온통 까만 칡물로 물든 저고리 입은 어머니가 숨박꼭질 하듯 동구(洞口) 어귀를 돌아서 총총히 사라지고 나면 소년은 친구를 찾아야 했다.
가장 먼저 강아지 귀를 당겨보고 발길질도 해보고, 어제 아빠가 꺾어다 놓은 찔레 줄기를 정성으로 껍질을 벗겨서 안 먹으려고 발버둥치는 강아지 입속에 억지로 쑤셔 넣어도 보지만 네 다리를 휘젓다가 저 멀리로 도망을 쳐 버리니 할 수 없이 송아지에게로 가야 했다. 요즘 송아지는 사람처럼 태어나자마자 등록번호표를 달고, 미 대륙의 신세계 개척자인 총잡이들이 즐겨 사용한 상모 닮은 끈으로 된 굴레에 가두어져 있지만, 당시 송아지들은 첫 돌이 되기 전에는 그야말로 ‘굴레 없는 망아지’로 소년처럼 천방지축으로 즐겁게 뛰어 놀았던 것 같다.
엄마 배안에서 준비하는 기간은 사람이나 소가 비슷하지만, 태어나서 30분이면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송아지를 그것도 첫돌이 지나 코뚜레를 하고 워낭을 차고 ‘떨렁 떨렁’ 소리를 내면서 점잖게 말을 잘 듣는 누렁이소가 되기 전에는 소년이 잡고 논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강아지를 그렇게도 괴롭혔지만 엄마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되면서 소년의 무료함을 달래주려 하지만, 도저히 양에 차지 않았다 이때 사용하는 단골 메뉴가 있었다. “이모, 이모! 이모야!” 옆집과 소년의 집 사이에는 아직 소년의 엄지손톱 정도 밖에 안 되는 열매를 달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어서 행여 못 듣고 오지 않을까 염려되어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이모! 배 아파. 배 아프다구.” 라고 고함을 쳐본다. 소년에게 이모는 엄마의 자매가 아니었다.
‘소년의 이모’는 진달래꽃 보다 더 예쁘고 고운 나의 누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이웃집 누나지만, 이렇게 고함을 처서 부르지 않으면 도통 대답조차 않으니 될 수 있는 한 크게 부른다. “오냐, 조리 삽작으로 오니라.” 하면서 아프다는 배는 만져 보거나 물어 보지도 않고 심지어는 머리만 쓰담쓰담 하면서 “심심하제 이모 무릎에 누워 보거라. 노래 불려줄게.” 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닷가 노래 “어무이가 섬 그늘에 구울 따려어어 가아면 아가가 혼자 남아아 지이이블 보오오다가....”를 끝까지 듣지도 못한 채 잠들게 하여 주시든 이모가 보고 싶다. -수필가 동화 한 봉 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46호입력 : 2017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