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47호입력 : 2017년 12월 06일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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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月따라 名言도 바뀐다.
동화 한 봉 수
오늘은 누나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이웃에 사는 高等學生인 어린 친구가 상당히 깊이 있는 질문을 보내 와서, 혹여 이 질문자 또래의 또 다른 疑懼者(의구자)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어린 친구의 질문 요지는, 古書에 보면 [其智는 可及하나 其愚는 不可及하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것을 해석해 달라는 말이었다. 요즘 흔해 빠진 인트넷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답을 얻을 텐데...... 조금 당돌하기도 하였으나, 행여나 지금 筆者가 가볍게 답(答)하여 마음의 상처를 줄 수도 있고, 장차 큰 학자(大學者)가 될 용기(勇氣)를 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부족하나마 나름으로 답을 드리고자 한다.
여기서 其智는 지식이라는 계념보다 지혜라고 해석함이 좋을듯하고, 可及은 ‘따라가다. 즉 본 받다.’ 정도면 족할 듯하다. 역시 其愚는 ‘어리석음 혹 무식함’ 보다 ‘지혜롭지 못한’ 정도로 해석함이 무난할 듯하다.
“ 지혜로운 사람의 행동은 따라갈 수 있으나 어리석은 사람의 언행은 흉내 내기가 실로 어렵다.” 정도면 무난할 듯한데, 이글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근본 취지를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이 賢人의 가르침을 흉내 내어 똑똑해 지기는 쉬우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의 언행을 보고 탓하거나 얕보기가 쉬어서, 자기보다 못한 그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접근하여 내가 그 사람 수준으로 낮추어져서 이해해 주기가 실로 어렵다는 말이니, 정말이지 않는가?
이 사회에,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승리하여 진급도 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나 아닌 너를 이기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을 승리라고 가르치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우기면서, 감히 ‘孔子의 仁’을 論하고, ‘釋迦의 깨달음’을 자기 것처럼 생각하고 ‘極樂 갈수 있는 資格證’을 획득하였노라고 생각을 하며, 예수를 믿는다고 선언하고 교회 종소리를 열심히 들었으니 天國에 갈 것이라고 부득부득 우기고 있는 저 사람들처럼 낮아져서 理解해 줄 人間性을 갖추기가 그리 쉬울까?
수천 년 전에, 교육제도도 미약하고 전달체계도 약하던 그 시절에도 앞서 언급한 이 사상을 완전히 이해하고 크게 깨우쳐 실천하고 가신 賢人 老子께서는 “ 알면서 모르는 것이 최상이요, 모르면서 안다 함이 病이다.”라고 하신바가 있다.
여기서도, 지혜가 있어서 당시의 법칙이나 지식 함유 정도가 많은 이가 일반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어 성실히 살아감이 최상급이요, 지식이 뛰어나게 높거나 기술이 다른 사람들 보다 고귀하다 하여도 일반인들과 같은 눈높이로 낮추어서 그들에게 혜택을 베푸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나는 지식이 높고 기술이 좋다.’ 라고 말함은 病이라고 하신 높은 경지의 말씀을 어린 친구여 이제 이해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
보잘 것 없는 筆者의 글을 정성껏 읽어 주시는 독자들께 양해를 구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한 말씀 더 드리자면, 비가 오는 날 용기(容器)를 가지고 나가서 빗물을 받아 보시라. 곧장 더 이상 받질 못하고 넘쳐흘러 보내는 현상을 볼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간단한 세상원리를 제법 많은 어른들이 미처 알지를 못하며 살아가고, 안다 할지라도 외면하고 무조건 많이 내 것으로 만들려고 발버둥 치면서, 때로는 사회적 약속을 무시하는 언행을 하여 양 손목에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하는 은팔찌를 차고 차창 문을 쇠 코쟁이가 복잡하게 가리고 있는 버스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소식통에서 본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여러분, 기성세대는 새로운 세대를 걱정하였고, 신세대는 구세대의 요구사항이 항상 모순되고 못 마땅하였음을 갈등하면서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이상을 이어 왔습니다. 제발 여러분은 이러한 표면적으로 나타난 현상만을 생각하면서, 그 갈등들이 보다 바람직하고 양성적인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루는 영양분이었다는 사실을 지나치는 오류를 경험하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고마워요. 끝까지 읽어주어서. <수필가>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47호입력 : 2017년 12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