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아침식사를 아홉 시 쯤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면 그만 정오가 훌쩍 가버린다. 정오가 넘으면 오후 다섯 시가 되면 직장에 일하러 가야된다는 부담감에 한숨을 자야지 싶어서 억지로 애를 점심을 먹이고 손자에게 당부 아닌 당부를 또 하게 된다.
"할머니 자니깐 너 뭐하고 놀래?" 하고 묻고서는 어린이 프로를 틀어주면서 세 살짜리 손주에게 엄포들 놓으며 등을 돌린다. “ 너 할머니 자는 방에 들어오기만 하면 혼 낼 거야” 하면서 어름장을 놓고 생명의 실상 책한 권과 안경을 들고서 비록 대낮이라 할지라도 아주 안정감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잠깐 동안의 광명서적을 읽다보면 잠이 스르르 온다.
아이는 할머니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혼자서 자동차 놀이를 하는 기세이다. 그런데 세 살 박이 아이가 산 속에서 혼자 논다는 이 일이 만만치 않다. 혼자서 놀던 아이가 시간 개념이 없는 관계로 할머니가 자고 일어났나 싶어서 수시로 문을 열어보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그 세 살 박이 아이를 두고 내가 실랑이를 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여 실소를 퍼뜨릴 때가 많은 요즈음이다.
행여 책을 읽고 있는 할머니 모습이 손주 눈에 들키기라도 하면 나도 책 볼거야 하면서 그림책을 들고 와서 내 옆에 착 하니 앉는다. 그때부터는 내가 밀어낼 명분이 없으므로 그래저래 또래처럼 싸우다가 강제로 아이를 안고 사이사이 도둑고양이 잠을 자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제 이 일상의 풍경이 바뀌어 지게 되었다. 그림이 수정되어진 것이다. 아침 일상은 그대로지만 오전 9시에 아이가 놀이방을 가게 된 것이다. 아침 9시에 아이가 놀이방을 가고나니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 대폭 확장 되었다.
오후 5시까지는 나의 시간이다. 이제야말로 내가 에초에 그린 스케치대로 일상의 윤곽을 드러내는 색칠을 하여 내가 그리는 완벽한 풍경으로 그림을 수정해야 될것 같다. 애시당초 이곳으로 귀촌 할 당시 그려 보았던 그림이 윤곽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 수 년 간 내 가 그린 스케치대로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얼마나 짜증을 내었든가 ?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는 풍경으로 말미암아 쓸데없는 줄 알면서도 남편 속을 뒤집고 손자를 맡기고 간 딸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많이 후회가 된다. 그러나 좀 더 진취적인 인생을 향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렇게 화를 내기도 하고 남편에게 앙탈을 부리기도 하고 스스로의 입장을 탓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장 좋은 쪽으로 가게 되는 것을 말이다.
올 봄부터는 우리 가족 모두가 좀 더 안정을 찾을 것으로 기대를 해본다. 참 요즈음은 일주일에 두 번 친구와 둘이서 열심히 또 다른 시각화 명상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한다. 출근시간 30분전에 만나서 차 안에서 둘 만의 명상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에 대나무 숲을 휘 젓고 날아가는 수 십 마리의 저 참새들도 내가 그린 스케치속의 한 부분이요, 흘러가는 저 뭉게구름도, 내 집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수 백 년 먹은 아름드리 저 소나무도 내가 그린 스케치속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명상의 힘을 자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