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55호입력 : 2018년 0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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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쉼표, 그리고
박경혜
늦여름 오전의 공원에는 여전히 햇볕이 기세를 부리고 있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공원인지라 아직 어린 나무들은 품이 좁아 충분한 그늘을 내어 주지 못한다. 드문드문 앉은 몇 분의 노인은 더위에 지쳐서인지 정물화처럼 고요하다. 매미 소리만 적막함을 몰아내려는 듯이 요란스럽다.
며칠 앓아누우셨던 어머니를 닥달해 찾은 공원이다. 만사 귀찮다고 손사래를 치시는 것을 누워만 계시면 기력이 더 달린다고 성화를 부렸다. 냉커피를 만들어 담고, 파라솔을 챙기며 부산을 떠는 딸을 이길 수는 없었음인지 겨우 몸을 일으켜 나선 참이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볕이 따갑다. 겨우 작은 그늘 하나에 자리를 잡는다. 어머니는 힘겹게 앉으며 거친 숨을 고른다. 짧은 거리인데도 힘에 부치시나 보다. 몸이 많이 쇠약해지신 것만 같아 내심 가슴이 아리지만, 내색하지 않고 티끌도 없는 자리만 툭툭 털어낸다. 바람도 없이 고요한 날씨가 더위를 부추긴다. 멀지 않은 거리에 두 할머니가 앉아 있다. 서로 아는 사이인 것도 같고 모르는 사이인 것도 같은 애매한 거리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중이다.
간간이 들리는 느린 말투와 더 느리게 돌아가는 맞장구에도 대화는 끊어지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었다면 어림없는 일일 터이다. ‘빨리 빨리’에만 길들여진 탓인지 상대방의 느린 말과 행동에만 길들여진 탓인지 상대방의 느린 말과 행동에 잠시도 기다려 줄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두 분의 대화가 공원의 분위기를 더 나른하게 만들고 있는 듯하다. 지친 어머니께 부채질을 하고 있자니 할머니 한 분이 힐끔 돌아보며 뜬금없이 혼자말인 양 중얼거린다. “딸인가, 며느리인가?” 굳이 대답을 듣자는 것은 아닌 듯 한데도 “큰 딸이라요”. 혼잣말처럼 대답을 하는 어머니. 할머니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다시 당신들만의 대화로 돌아가 버린다. 어머니 역시도 아까부터 그랬던 것인 양 휘어져 일자로 쭉 뻗어지지 않는 두 다리를 주무르는 데 열중한다. 실없는 대화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난다.
저만치 떨어져 앉아 움직임이 없는 한 쌍의 노부부가 눈길을 끈다.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쪽은 그늘이지만, 나무의자에 앉은 할아버지 쪽은 볕이 더 많다. 그늘에 앉아 있어도 성근 나뭇잎으로 내리꽂히는 볕이 따가운 날씨다.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는지 자리를 옮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한참을 보아도 대화가 없다. 각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신 것인지 멍하니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것인지 움직임조차 없다. 안쓰러움이거나 혹은 서글픔 같은 감정이 마음을 살살 간질인다.
자꾸 신경이 쓰여 힐끔거리다가 냉커피를 여러 잔에 나누어 담는다. 주변의 어르신들부터 한 잔씩 나누어 드리며 노부부에게 다가가 슬며시 두 잔을 건넨다. 할아버지는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기어이 한 잔만 고집하신다. 휴지를 받친 채 받아 든 커피를 할머니 입으로 먼저 가져간다. 벌린 듯 만 듯 입술이 조그맣게 벌어진다. 할아버지가 조심스럽게 잔을 기울이지만,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밖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더 많다. 아까와는 다르게 할아버지가 빠른 손동작으로 커피를 닦아낸다. “대단한 영감님이데이, 저 할매가 벌써 언제부터 저런지 모른다. 뇌졸중이라 카든강 중풍이라 카든강 그래가 쓰러졌는데 저래 됐다는 기라” 어머니가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자리로 돌아와 앉는 내게 하는 말이다. 이미 그분들을 알고 있었나 보다. “얼매나 지극정성인지. 할매 입성 봐라. 성한 사람도 맨날 저래 깨끔하게는 몬 해가 다닐 끼다. 영감님 정성을 봐서라도 고마 좋아져야 될 낀데….” 하시며 말끝을 흐린다.
유심히 살펴보니 할머니의 깔끔한 차림새와는 달리 할아버지의 모습은 후줄근하다. 표정도 없다. 할머니는 환자라 그렇다 쳐도 할아버지는 긴 병간호에 몹시 지쳐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달리 돌봐주는 사람이 없는 걸까, 궁금증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득 여러 해 전에 중풍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오랫동안 혼자서 건사하던 할아버지가 동반 자살을 했던 기사가 떠오른다. 너무나 지쳐서 더는 아내를 돌볼 힘이 없고, 자식들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는 유서를 남겼다. 할아버지를 탓할 수도, 자식들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 아팠던 기억이 문득 생생하게 살아난다.
노부부는 커피를 나누어 마시고 다시 정물이 되어 있다. 한참 후,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로 몸을 기울인다. 손짓을 섞어가며 몇 마디 하는가 싶더니 휠체어를 밀고 공원을 나선다. 아마도 할머니가 어떤 요구를 하신 모양이다. 한 발 두 발 힘겹게 발자국을 떼는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어깨와 뒷모습이 힘에 부쳐 보인다. 두 분의 모습이 사라진 지 한참이건만, 느리게 굴러가던 바퀴의 잔상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어머니도 같은 마음이신 걸까. 어쩌면 그분들의 모습에서 머지않는 당신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인지 애잔한 표정으로 말이 없다.
공원의 풍경은 다시 고요한데 말매미 소리는 여전히 시끄럽다. 예로부터 매미를 군자에 비유했건만, 끊이지 않는 요란한 울음소리에 머릿속이 더 시끄러워진다. 군자로 칭송받은 건 아마도 마디마디 쉼표를 찍을 줄 아는 참매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여름날, 다시 고요해진 공원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