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58호입력 : 2018년 02월 27일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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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제2회) - 서상조
어쨌든, 큰 숙제를 해결해야만 되는 마음으로 다시 차를 몰았다. 시골집에 도착한 명주는 언뜻 놀랐다. 일군 세 사람이 벌써 집 마당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지루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리는 명주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구, 무슨 꼭두새벽부터 나오셨어요” 놀라고 미안한 마음에 인사를 건네는 명주에게 옆 동네 강선배가 인사차 말을 받았다. “이 사람아, 시원할 때 일을 해놔야 낮에는 좀 쉴게 아닌가?” 하고는 객지에서 들어와 산다는 일꾼들을 소개했다.
낡은 사랑채만 뜯어내고 마당을 넓히려 했던 명주는 어쩌면 계획보다 빨리 귀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본채 수리까지 몽땅 맡겨 버렸다. 그리고는 어수선한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탓에 들판을 한 바퀴 돌아 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어릴 때 소를 먹이던 뒷산은 변함없이 배부른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나무가 그때 보다는 더 무성해져 산이 전체적으로 큼직해진 느낌이 있었다.
정체성을 되찾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러나 명주는 자신을 키워 낸 고향의, 변함없이 온화한 환경들이 인간관계에서 영민하지 못한 자신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다. ‘하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변하지 못하는 내가 어쩌면 잘못 된 게지’ 명주는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이어 갔다.
들판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자신을 혼란에 빠지게 한 원점에 대해 온 몸으로 부딪혀 깨어 부순 뒤 존재할지도 모르는 이면의 세계를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명주는 집수리까지 단단히 일러두고는 다시 도시를 향해 차를 몰았다. 집 근처까지 도착한 명주는 늦은 점심 겸 속 풀이를 할 생각으로 자주 가는 복어 탕 집으로 갔다. 맞이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인사가 오늘따라 더욱 호들갑스럽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전에 올 때와 다를 바가 없는데, 명주 자신이 달라진 것이었다. 이제 사람한테는 일단 거리를 두고 싶기도 하고, 어쩌면 그놈의 이면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설령 상대가 진심일지라도 명주는 정상적으로 바라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거대한 이면의 세계를 강한 충격으로 느껴 버렸기 때문이었다. 스스로에게 이면에 대한 오류가 있다할지라도 묵살해 버릴 오기가 생겨 버렸다. 늦은 점심이긴 하지만 사실은 아침인 셈 이었다. 명주는 밑반찬으로 나온 복어 껍질을 씹으며 복어가 원래 지녔던 독을 들이키듯 비장한 표정으로 소주를 목구멍에 부어 넣었다.
명주는 미리 마음먹고 날을 잡았기에, 작정하고 도훈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을 단단히 했다. 그러나 마음은 혼란스럽고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두근거림이라니’ 명주는 야릇하게 흥분되는 자신의 마음을 비웃었다. 도훈에게 던질 질문을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다가 차라리 그냥 속 편하게 나오는 대로 지껄여 버리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술을 먹거나 그렇지 않으면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만났었는데, 이번에는 보름 만에 약속을 잡은 것이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조용한 술집에 도훈이 먼저 와서 창가의 낯익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술과 안주가 나오자 별 뜻 없는 대화로 술잔만 대 여섯 차례 기울였다.
그러다가 명주는 창밖을 바라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속에 있던 말을 꺼냈다. “도훈아, 이 세상을 보이는 대로 믿고 살면 우리 마음이 얼마나 편할까?” 말을 뱉아 놓고는 오히려 자신이 혼란을 느꼈다. 속마음을 솔직히 드러내지 않고 우회해서 던지는 말이 또 하나의 이면인 듯해서였다. “맞아, 보이는 대로 믿고 사는 것이 편하고 맞은 것이야. 그런데 그렇게 살면 돌 맞은 개구리가 되는 거지”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복잡하게 생각을 하면서 살아야 된다는 거야?” 도훈은 한심스럽다는 듯이 명주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20%는 의심을 가지라는 것이야. 발을 뺄 준비를 상시적으로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거 있잖아” 도훈의 모습이 이제야 정체를 드러내는 유령처럼 느껴져 허벅지가 움찔 해왔다.
명주는 두 사람의 사이가 갈라져 아득히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혹시, 돌 편지를 들어 본 적이 있니? 아버지가 냇가에서 어린 아들한테 자신이 해주고 싶은 말과 꼭 닮은 돌을 주워 준다는데 그건 아버지와 아들 간에 변하지 않는 돌처럼 영원한 일체감이며 사랑의 표시래” “돌? 그게 뭐라고? 어린애 장난이구먼. 에라이 친구야 술이나 마셔” 그때부터 도훈의 말대로 명주는 집으로 돌아 올 때까지 술만 마셨다. 일말의 위안을 갖고자 도훈의 정체성을 확인하다가 절망감만 느끼고 만 것이었다. 술이 취한 가운데서도 명주는 뇌의 한쪽 구석이 말갛게 청명해짐을 느꼈다.
긴 시간동안 주위의 많은 일들을 이면이 존재하는 구조에 대입시켜 보았다. 정치인들의 자기 치장을 위한 가식, 회사에서 근엄한 척하면서 사생활은 유치한 김 전무, 뉴스의 단골메뉴로 나오는 온갖 비리들이 이면에서 비롯되고 이루어지는 사실임을 곰곰이 짚어 볼 수 있었다. ‘하기야, 오죽 했으면 비하인드(behind)가 이 시대 관심의 초점이 되어 뉴스 타임의 제목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호에 계속>
[작가 약력] 서상조 fire-wang@hanmail.net 2000년 『문예사조』시부문 등단 2001년 『대구문학』소설부문 등단 대구문인협회·솔뫼문학회 회원 (사)한국문인협회 고령지부 소설분과위원장 (사)한국문인협회 고령지부 회장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58호입력 : 2018년 0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