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5-08 오후 02:31:08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검색
속보
;
뉴스 > 기고/칼럼

[수필] 삼 일간의 여삼추(如三秋)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63호입력 : 2018년 04월 04일
카카오톡트위터페이스북밴드네이버블로그
[수필]
 
ⓒ 고령군민신문 

삼 일간의 여삼추(如三秋)


시인·수필가 오 해 옥


마른 가지에 주홍 꽃이 조롱조롱 열렸다. 펄럭이는 치마 속에 언뜻 보이는 아낙 엉덩이를 닮았다. 씨름판 장정의 배꼽 두드러진 복부를 닮았다. 긴 장대 끝을 창 모양으로 만들었다. 팔순 초로는 굽은 허리로 감 가지를 꺾는다.
‘툭’ 떨어지는 땡감 몇 개는 건장하고 하나는 산산조각이 났다. 곁에서 지켜보던 할머니가 재바르게 달려가 감 조각을 주섬주섬 바구니에 담았다. 순간 타다 남은 뼛조각이 생각난다. “상주님, 화장이 끝났습니다.”라는 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전광판에 익숙한 이름이 올라왔다. 화장된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그 곳으로 들어갔다. 껴안고 사랑하던 열기, 떠나가기 위한 당신의 열기, 자줏빛 오리털 파카 속에 남은 당신의 온기를 느끼며 통곡했다. 아궁이 속에 뼈가 가지런하게 누워 있다. “확인되었지요?” 화장장 직원의 음성이 마치 염라대왕 같다. 일상적 직업이지만 너무 사무적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딱 한 줌의 재였다. 사진과 유골함을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나.

이틀 전, 남편이 나에게 안기던 모습을 기억한다. 집에 가고 싶다는 음성이 귓전을 아리게 한다.
상주가 안아야 한다기에 큰아이는 훌쩍거리며 유골함 속의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작은 항아리에 한 줌 육신을 모시고 화장장을 떠나 장지를 향했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구두에 밟히는 모래 소리만 사각사각 들린다. 광명진언을 정근하며 큰아이 옆자리에 앉았다. 유골함의 따스한 온기가 손으로 전달되어 온다.

뒷산을 넘으면 본가가 있다. 오(吳) 곽(郭) 양 문중의 서원이 있는 곳이다. 시조부께서는 서원에 행사가 있을 때는 산을 넘어서 왕래하실 정도로 지척의 거리를 둔 곳이다. 친정과 시댁은 문중 간 맺어진 형제 같은 인연으로 우리 부부의 만남은 특별했다.

내가 어릴 적 뛰어 놀던 동산이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새싹들은 뾰족하게 고개를 내민다. 모내기 준비를 하는 논바닥에서 곡소리가 들린다. 청개구리는 분명 아니다. 악머구리가 더 슬피 울어준다. 한 마리가 울면 또 옆 개구리가 따라 운다. 엄마의 울음에 두 아이와 며느리는 더 슬퍼하며 참았던 울음을 터뜨린다. 머리 위로 훨훨 하얀색 두루마기 입은 황새가 날아간다.

조문을 받는 두 아이는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상주가 되었다. 억울함을 곡소리에 싣는다. 구슬프다. 조부 산소의 발치쯤에서 포크레인 소리가 곡소리를 더 부추긴다. 할아버지의 품안으로 가길 원해서 택한 황토집은 가지런하게 정리되고 있다. 조상을 종교같이 모시고 뿌리를 소중히 여기던 남편이었기에 “이곳이 당신의 자리네.” 라며 혼자 중얼거린다. 황토 집 앞에는 대대손손 윗대 어른들이 계시고, 사당이 있고, 지척에 처갓집 불천위 종택이 있다. 맏사위로 들며 나며 관심을 받고 싶었겠지.

온기가 느껴진다. 애틋한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아이는 유골함을 더 꼭 껴안는다. 하관 시간에 맞춰 안치해야 한다는 말이 들린다. 아이 둘은 폭포 같은 물줄기를 뿜어 댄다. 한 생명이 태어나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통해 인연을 맺어 간다. 부부 연(緣), 부모 연, 자식 연이 아닌가. 당신을 떠나보내는 아픔보다 아버지를 그리워할 아이들이 애처로워 더 가슴 저려 온다.

오지랖에 황토를 안고 조용히 다독거려 덮어 준다. 한 사람, 한 사람 체로 거른 황토 이불을 덮는다. 애통함이 저려 형제들은 더 우렁찬 곡소리를 낸다. 격식과 범백을 중시하던 동생의 마음을 헤아려 시숙은 지곡하지 않는다. 나와 동갑내기 시누이는 “꺼이꺼이” 슬픔과 억울함을 섞어 다른 사람을 울린다. 봉우리가 하나 생겼다. 당신이 그 속에 있단다.

흙이 참 곱다. 침대 위 우리 둘이 덮던 황토색 이불 같다. 우중의 봉우리는 초록과 황토 빛깔로 되었다. 아이 둘과 며느리 그리고 나는 봉우리 주위를 계속 돌았다. 손바닥에서는 아직 당신의 온기가 느껴진다.
금방 볶아서 만든 미숫가루의 온기와 같다. 몇 달간 굶은 담뱃불을 붙인다. 담배 향이 산천을 퍼져 나간다. 머리를 풀어 헤친 연기는 너울너울 구름을 따라 올라간다. 당신의 진한 향기가 이승과 이별하기 위해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검정 한복에 흰 고무신을 신고 친정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한다. 머릿속에는 억울한 감정이 요동친다. 부덕의 소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하며 책임감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으로 어머니를 만나 뵐 자신이 없었다. 산천을 뒤로 터벅터벅 내려왔다. 황토 봉우리 속에 누워 있는 당신을 그려 본다.
뒤돌아보고 또 돌아봐도 주심해서 내려가라고만 한다. 핸드폰 속의 시계를 봤다. 봄날의 오후였다. 정말 우습다. 몇 해가 지나간 줄 알았는데 사흘이 지났다.

지그시 감은 눈 속에서 32년의 필름을 되돌려 본다. 필름이 자꾸 물속에 잠긴다. 옷깃으로 닦고 또 닦았다. 암 진단 받은 몇 개월 후, 이렇게 당신을 보내는 게 억을할 뿐이다. 떠나가는 당신을 붙잡지 못하는 어리석은 미물이 바로 인간이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몇 개 남은 감을 따고 계신다. 둔한 동작으로 꺾어 주는 감을 받아 할머니는 바구니에 넣는다. 오늘따라 노부부의 모습이 무척 다정해 보인다. 어김없이 계절은 올 터인데.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63호입력 : 2018년 04월 04일
- Copyrights ⓒ고령군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사설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요일별 기획
문화
생활상식
시뜨락
기자칼럼
공연/전시
사회단체
고령소방서, 2026년 봄철 산불예방 캠페인 실시  
고령소방서, 대가야 왕릉길서 봄철 산불예방 캠페인 실시  
고령소방서, 지역 상생 실천 농촌 일손돕기 실시  
인물 사람들
(사)대한노인회 고령군지회, 2026년 경북노인건강대축제‘게이트 볼(여
(사)대한노인회 고령군지회 (지회장 나원식)는 2026년 4월 29일 경북 경주시 축구공원 5ㆍ6 구장 일원에서 개최된 ‘제6회 경상북도 노인 
신나는 어린이날! “제20회 고령군 희망의 새싹 큰잔치”행사 개최
고령청년회의소(회장 박용빈)가 주최·주관하고 고령군이 후원한 제104회 어린이날 기념“제20회 고령군 희망의 새싹 큰잔치”행사가 5월 5일 대 
회사소개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고령군민신문 / 주소: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월기길 1
대표이사 겸 발행인: 박병규 / 편집인: 박병규 / Tel: 054-956-9088 / Fax: 054-956-3339 / mail: kmtoday@naver.com
청탁방지담당관: 김희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병규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경북,다01425 / 등록일 :2012년 08월 24일
구독료 납부계좌 : 농협 301-0112-5465-81 예금주 고령군민신문 / 후원계좌 : 농협 301-0112-5465-81 예금주 고령군민신문
Copyright ⓒ 고령군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방문자수
어제 방문자 수 : 41,757
오늘 방문자 수 : 9,500
총 방문자 수 : 59,80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