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령의 문화유산이 지역 곳곳에 분포돼 있다. 선사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유적 144개소와 중요 유물 9건 등에 대한 안내를 담은 ‘고령의 문화유산’이 지난해 발간됐다. 이에 고령군민신문은 ‘고령의 문화유산’에 수록된 암각화와 지산리 당간지주 등 보물로 지정된 국가지정문화재를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편집자주>
고문서는 고령 지역에서 세거해 온 세조 때의 적개공신 오로재(吾老齋) 정종의 종손 정연동(鄭淵東)의 집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교지(敎旨), 호구단자(戶口單子), 통문(通文), 소지(所志), 품목(稟目), 완문(完文) 등 총 45건에 48매이다. 정종은 조선 전기의 무신으로 1453년(단종1) 11월 이징옥(李澄玉)의 난 때 종성절제사로서 이징옥을 포살(捕殺)한 공으로 군공(軍功) 1등에 책록되고 당상관으로 승진하였다.
1467년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율원군(栗原君) 이종(李徖)의 휘하에서 총통군(銃筒軍)을 이끌고 출전하여 공을 새웠다. 그 공으로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되었으며, 행충무위상호군겸오위장(行忠武衛上護軍兼五衛將)에 임명되고 동편군(東平君)에 봉해졌다.
덕곡면 반성리에 있는 반암서원(盤巖書院)에서 재향되고 있으며,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정종적개공신교서 및 관련 고문서는 대부분 정종과 관련된 것으로 그중 정종정충적개공신교서(鄭種精忠敵愾功臣敎書)는 1467년(세조 13) 정종이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공신에 책록되어 받는 것이다.
당시 세조는 공을 세운 45명을 뽑아 3등으로 나누어 공신에 책록했는데 1등 정충출기포의적개공신(精忠出氣布義敵愾功臣) 10명, 2등 정충포의적개공신(精忠布義敵愾功臣) 23명, 3등 정충적개공신(精忠敵愾功臣) 12명이었다.
‘정종 무과급제 교지’는 정종이 1442년(세종 24) 무과 병과에 급제하면서 받은 교지로 조선시대 고신의 서식이 왕지에서 교지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주는 자료여서 의의가 크다. 정리. 이형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