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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계순 _ 시인/수필가 |
고추밭에서
고추밭에 서면 배가 불러 온다
어린 풋고추들이 엄마한테 오롱조롱 매달려 잘도 자란다.
녹음 속 풀벌레 소리에 귀 따갑고 모기들 귓가에서 윙윙거리고 놀 때 여름은 고춧대를 자근자근 밟고 만져 준다
대나무 가지로 북돋워서 새끼들 잘 키우라고 정을 푹푹 주는 할머니의 손
개미들이 할머니 치맛자락에 올라간다 가서 젖무덤 어딘가를 깨무는 한가로운 오후
망 보던 까투리 후다닥 날아가고 풋내 나는 풋고추들 복스럽게 커간다
고추가 익어간다
초여름과 늦여름 사이의 동안. 초록색이 더 짙어가는 시기에 고추밭에 가면 보석 같은 고추들이 달려 있다. 풋고추가 오롱조롱 열려 있는 정경은 쳐다만 봐도 배가 불러오는 포만감이다.
고추는 사랑스런 작물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작물이다. 초록이 영글어 그 사랑이 넘쳐 붉어지는 동안 햇볕과 바람과 땅이 그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퍼부을 것인가. 사랑이 익어가는 동안 그 사이를 발효의 시간이라 하자, 아니 기다림의 시간이라 하자, 아니 설렘의 시간일 것이다.
햇볕은 아주 강하게 자기의 정력을 과시하고 땅은 그 힘을 받아 불끈불끈 움직이며 생동감 있게 움직여질 것이다. 여름은 덥지만 그 태양 아래에서 우리도 같이 익어가며 여름을 즐겨야 할 것이다. 숲은 무섭도록 더 무성해지고 나무들은 더 힘차게 힘을 북돋우면서 푸른 생명력을 잘도 자랑한다. 그런 여름 논에는 벼들 살랑거리며 키가 자라가고 거랑물은 쉴 새 없이 종알거리며 춤추며 논들에다 젖을 먹인다. 그 사랑의 힘으로 모든 것들이 평화를 유지하고 자연은 더 성숙해진다. 애기 풋고추에 우주의 힘 하나가 영글어 그 우주가 팽창해지면 고추는 빨갛게 익을 것이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질 때 고추는 빨개진다. 빨간색은 정열과 성숙의 에너지다. 우주의 에너지가 한 곳으로 뭉쳐서 풋고추의 몸에 실리면 그 풋고추는 마침내 빨갛게 변해 질 것이다. 태양 아래서 여름이 무르익고 곡식이 익어가고 사람도 익어가는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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