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때 그분을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다'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21년 08월 09일
1977년 8월 6일 우리 고령을 찾은 故박정희 대통령, 44년이 지난 2021년 8월 7일 토요일 본 기자는 구미시 상모동 故박정희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35℃를 오르내리는 한낮의 열기도 아랑곳없이 이곳 생가를 찾는 이들의 발걸음은 이어졌다.
생가에 도착하기 전에 ‘박정희 민족중흥관’을 들어서니 ‘내 一生 祖國과 民族을 爲하여’ 라는 휘호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순간 발걸음을 멈추니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숙연해지는 마음을 아듬고 대통령의 업적을 둘러보고 나와 다시 생가를 찾아 먼저 분향소에 들러 참배한 후에 둘러본 생가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박대통령의 조국사랑 앞에서는 팔월의 뜨거운 태양도 무색한 날이었다. (편집자주)
■보릿고개를 넘어 세계 속의 한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1963년 제5대부터 제9대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우리나라를 통치해온 대통령, 故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군사독재를 해온 독재자란 오명과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공로가 상반되게 평가되고 있지만 경제에 대한 그의 공은 우리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것이 그 주된 이유다. 그의 경제 업적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토대를 닦았고,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한민국 성장의 원천을 찾아 우리나라를 일으켜 세웠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으로 말미암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국민의 80% 이상이 농업을 생계로 살아가던 아시아의 한 가난한 나라를 세계 경제규모 상위권의 나라가 되도록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 기본 시설과 기반 등을 탄탄히 만들었다는데 기여한 점은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싱가폴의 리관유, 인도의 무샤라프, 중국의 등소평,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등 외국의 유명한 정치 지도자들이 격찬하기도 했다.
■ 우리나라 역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 소박한 서민, 故 박정희 대통령
한국인의 애환과 숨결을 읽을 줄 알았던 토종 한국인 민족중흥, 조국근대화가 삶의 본질 그 자체였던 대통령, 논두렁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농부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던 대통령, ‘하면 된다’는 의지로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대통령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본관은 고령이다. 선친이 고령에서 성주, 약목을 거쳐 이곳 구미 상모동에서 1917년 11월 14일 박성빈 공과 백남이 여사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 故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가 곳곳에 서려있는 상모동 생가 박정희 대통령 생가로 올라가는 골목에서 제일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곳은 ‘보릿고개 체험장’이다. 배고픔을 경험해보지 못한 요즘 세대에서는 알 수 없는 단어 ‘보릿고개’ 배고픔을 달래던 어려운 고개란 뜻이다. 그만큼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상황을 말해 주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라도 그 당시 힘들고 가난했지만 꾹 참고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노력한 분들의 고충을 잠시라도 느껴볼 수 있도록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
다시 골목길을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곳은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이다. 이곳은 기념품 판매소와 대통령의 향기실(유품 및 기념품), 기획전시실(휘호, 어록, 포토존), 대통령의 발자취(기록물 디지털 전시, 포토존), 동영상실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생가는 마을 안쪽 끝집이다. 생가는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추모관이 있다. 생가 입구에 들어서니 좌측에 마련된 추모관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두 분을 분향, 추모하고 나오면 사랑채가 눈에 들어온다. 내부에는 1920년 박대통령 모친이 사용하셨던 옷장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바로 옆은 당시 대통령께서 공부하셨던 공부방으로 공부할 때 사용했던 앉은뱅이 책상과 책꽂이 그리고 호롱불도 그대로 있다.
그 옆에는 디딜방아와 외양간도 있으며 뒤뜰에는 1929년 봄에 박대통령께서 어머니와 함께 심었다는 감나무와 직접 사용하셨던 우물펌프가 정겹게 그대로 남아 있다.
생가 건물 중 초가는 원상태로 보존되고 있으며 1993년 2월 25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로 지정되어 유족과 구미시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다.
대통령의 생가는 그의 공과를 떠나 우리의 산 역사다. 우리 역사에 매우 중요한 시기에 나라를 이끌어 가셨던 분으로 오로지 조국 발전에 생을 바친 그는 우리의 영웅이 분명하다. 이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