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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글쟁이 동화 한 봉수 |
이글을 젊은이들이 많이 읽기를 희망하며 시작합니다.
누구나 마무리는 곱게 치장하여 아름답게 하고자 할 것이다. 세상에 膾炙(회자)하는 말로 [유종의 미]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美는 아름답다란 뜻으로 ‘바라는 되로 이루다.’ 혹여 ‘모두가 공감 하는 되로 되다.’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침 어린 학동들이 학년이 진급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고 달포가 지나가고 있으니 설렘과 기대와 서먹함이 익숙함으로 자리매김하여가고 있을 듯한 마음에 먼저 온 세대로서 아름다운 갈무리를 위한 노력이랄까? 아니면 훈수(訓手)정도라도 하고자 붓을 들어 본다.
우리 인생은 하나의 조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설계라는 계념을 가장 먼저 도입해야 하는 것이 보편적인 작품 활동이나, 인생은 본인도 모르게 우주만물의 원리에 따라서 진행되어가고 있고 자아의식(自我意識)으로 자기의 인생길을 깨닫는 시기는 이미 중간 시점 아니 종점에 와서 일지도 모른다. 어쩜 우리네 인생은 일상화 된 종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절대자들의 설계도에 따라서 살아가다 멈추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렇다면 무슨 재미가 있나? 정말로 내 인생이지만 절대자가 계획한 인생으로 살아야 한다면, 일탈하여 보는 것도 또 다른 흥미로운 일기장 아닐까?
지금으로부터 4-5백년전만해도 인류 평등사상이 아니라 지배와 피지배층이 상호 인정되어 온 역사라 하여도 크게 어긋남은 없을 것 이란 생각에서, 동서고금의 역사 흔적에서 조상의 성과물을 자축하는 행위가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고장만 하여도 약간의 괴이점은 있지만 점필재 어른의 후손들은 조상의덕으로 관광객들의 호기심으로 상춘객을 맞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선악과를 따 먹은 후손들답게 인류의 지혜나 인지도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하나님의 명령인 이 세상을 지배하는 능력이 배가되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스갯소리로, 세종임금시절에 옥당에서 공부하다 지처 잠시 졸고 있는 당시 대학자였던 젊은 신하에게 곤룡포를 벗어 덮어 주고 빙고지기에게 명하여 얼음물 한사발을 하사하여 그 신하는 감읍하여 더욱 맹진하였다는 일화가 있는데 요즘은 누구나 인체에 가장 적합한 이온냉수도 즉시로 마실 수 있는 세상이다.
이야기 맥을 수정하여, 그렇다면 우리 인생이 어떤 사유로 인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고 조상들의 큰 업적이 없는 이들은 죽을 때까지 가장 힘들고 소위 천한 움직임으로 일관하다가 가야 하는가? 정말 그렇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젊은이들이여! 요즘 자네들이 애용하고 있는 전자기기로 검색해보면 곧장 알 수 있을 것이네만, 라듐이나 우라늄 따위의 특수한 물질이 내뿜는 강력한 힘(방사선)을 찾아낸 명석한 두 부부과학자들도 자신의 피부가 화상을 입어 썩어 들어가는 고통을 격은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네. 이러한 목숨을 걸고 일생을 인류공영에 이바지 한 역사의 흔적들로 인하여 우리네는 그렇게 훈계한 선악과를 얻을 수 있었고, 바벨탑조차 높이 쌓다보니 지금은 태양계 행성들의 비밀을 한가지 한가지씩 밝혀 이 세상의 상식화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그 많은 선각자들은 ‘그렇게 하라는 운명을 타고 났었다.’라고 하며 덮어두면 그만일까? 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생각한다네. 앞서 말한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어떤 힘의 작용으로 존재함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기체적인 생명력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보네. 마침 비온 후 대나무 밭의 죽순(竹筍)들 모양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화가]라 하지. 예전의 우리 조상들은 [칠쟁이]라고도 했었다. 사농공상의 사상과 대국우월주의 생각이 지배적으로 작용하여 [왕대 끝에 왕대] 난다란 말이 정설처럼 느껴질 때도 우리는 [개울에서 용 난다.]란 말로 평등을 바라다보았고, 2007년 기존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폐지하고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조인을 양성함을 보고, 젊은이들은 이숍 이야기의 여우가 되어 그대들은 집안의 영양력(재력,권력,학력)이 부족하다고 낭패감만 맛보려 하는가? 지금은 몰락한(?) 대우그룹의 회장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 그림을 그려보자고. 국악인 조 명창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했지만 오늘은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묵화(墨畫)를 저 멀리 밀쳐두고, 칠한 후에 또 칠하는 西洋畵 그 중에서도 油畫(유화)를 노래해 봅시다.
태어날 때 몸무게가 많이 나가면 메달 받고 부모에게 기쁨을 주던 시기, 잔디밭에 꽃을 꺾지 않으면 박수 받던 시절, 무사히 재수 안하고 대학가고, 군대 가서 죽거나 다치지 않고 귀가하면 칭찬받고, 대기업에 취직하고, 결혼하여 아들딸 낳고 ....... 이렇게 본인이 아닌 부모나 가족 동문 즉 우리라는 테두리의 관점에서 본 인생 말고, 본인이 보는 관점에서 본인의 꿈을 향하여 달려가는 유화를 그려가는 그대들을 상상해 본다. 일부러 일탈해 볼 필요는 없겠지만 일탈되어 잘못된 일기장을 기름물감으로 다시 밝게 그려보면 되겠지.
요즘 한글로 된 49제 마지막 날 간절히 기원하는 축원문에 “망자여 밝은 빛을 찾아 따라 가소서.”라는 말이 있다하던데, 내 마음의 색깔을 밝은색으로 하여 마지막 날에 웃으면서 내어 볼 여유를 가져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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