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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물을 퍼낸다.
‘넘친다. 보다는 들이닥친다.’라는 표현이 맞을 듯한 빗물을 퍼내고 있다. 필시 바퀴벌레보다도 끈질기게, 온갖 세상만사 행위의 잔재물인 오물로 범벅이 된 원수 같은 범람된 거리의 빗물이 몇 장 밖에 남지 않은 수건은 물론 막내 녀석 내의까지 총 동원하여 막아 놓은 문턱을 넘어 들어온다. 서류상에는 지상가옥이지만 지면 자체가 구릉(丘陵) 닮은 모양새라 차라리 포기하고 도망하고 싶은 악몽 같은 물 퍼내기를 하고 있다.
스물 평도 못 되는 작은 밭떼기에 심어 놓은 오이줄기를 힘들게 하고, 먼 옛날부터 전해온 구황작물(救荒作物)로 심던 메밀모종조차 말라붙게 하던 그렇게 모질고 악독한 태양의 뜨거운 햇살은 어디로 도망하였는지 요 몇일은 먹구름의 농간에 맥을 못 추스르고 이 모양이다. 착하게 성실하게 살면 반듯이 아름다운 말년이 부유하지는 못해도 궁핍하지는 않을 살림을 살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늘가신 할머님의 말씀은 늘 고픔 속에 박제된 훈시였나 보다.
새삼 거론하지 않으려고 이슬 맺히는 눈가의 이슬조차 훔칠 기력이 없는 절박한 시간이 흘려가고 있는 지금, 손오공이 타고 놀던 구름 한 조각이라도 보내주지 않으시는 하늘의 큰이를 원망하고 또 원망하며 보낸 시간이 불가 두어 주일 되나본데 무슨 조화인지 이토록 비를 억세게 내리시는가? 아마 하늘도 현 시대 인간들의 지혜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니 보조를 맞추어 날씨를 조절해 주지를 못하고 얼치기로 멈추었다가 ‘아이구! 가뭄이구나 비를 주자.’하고 정신없이 내려 주나 보다. 하늘을 보고 전지전능하다는 말을 하며 신격화 했지만, 이토록 무능에 가까운 부족한 절대자라면 차라리 민족사관학교에서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두뇌를 믿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도 같다.
우리가 하나 된 민족 정서로 그토록 미워하는 일제의 잔재 과학 기술과 사회 기간산업을 기초로 하여, 그야말로 죽을 각오로 노력하여 세계의 열방 속에서 비교적 선두대열로 살아가는 우리네의 입장에서 자연현상의 한 가지인 비 오는 정도로 이토록 우왕좌왕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사건이 터지고 나면 [여의도 넥타이] 그이들은 “인재다. 아니다 천재다.”하며 입에 거품을 물고 갑론을박들을 하곤 한다. 십여 년 동안 “4대강을 잘 막았다. 아니다 괜한 짓 했다.”하며 어릴 때 읽었던 무협지에 나오는 부모죽인 철천지원수처럼 말싸움하면서 대안을 준비 못하여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자니 정말 가슴이 아파오며 차라리 저려온다. 요즈음은 원전전기를 더 잘 운영 했었어야 했는데 세계역사의식에 역행하여 강제로 멈추고 태양광을 이용하여 전기를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 쓰자는 사업도 ‘잘된 것이다. 아니다 잘못된 것이다.’로 언쟁을 밥 먹듯 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환경오염 방지에 기여한 공로를 모르나?” 또 한편은 “산림을 무차별 파손하여 홍수를 자초했으니 무식함의 극치 행위였다.”등으로 유치원생도 안하는 싸움질을 그이들은 나이만 먹은 생각 없는 사람처럼 하고 있다.
논어를 읽고 배우면서, 공자(孔子)가 천하를 돌아본 이유를 산천유람이 아니었고, 선진문물 견학도 아니고, 무릉도원을 찾은 것도 아니며, 막연히 하나님께 하소연함도 아님을 알았다. 사람이 그래도 짐승보다 좋은 대접받으며 누구나 같이 기쁨이 존재하는 그곳을 찾아 아니 그런 세상을 만들 군주(君主)를 찾으려 그이는 수레의 말고삐를 당겼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이는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영원히 어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두 번 이상의 같은 반복된 실수는 인재? 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면, 고운비와 미운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본다. 가뭄에 오는 비는 아껴서 사용하고, 장마에 오는 비는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여 조절하는 기술력 확보하는 노력을 공자님처럼 온 인류에 이바지하는 정신으로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운 비와 미운 비]는 모두가 내 할 탓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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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글쟁이 동화 한봉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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