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의 애환 '고령 가야금'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12년 10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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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전통악기는 무엇일까라고 한다면 '가야금'을 선택할 사람들이 많을 듯하다.
그 이유는 1천5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 악기라는 점 이외에도 가야금 속에는 민족의 애환과 슬픔이 서려 있기 때문이라고들 답한다.
우선 가야금에는 대가야의 지식인이자 예술인으로서 가야금을 통해 쇠퇴해가는 나라를 바로잡고자 노력했지만 결국은 멸망을 지켜봐야 했던 우륵(于勒)의 슬픔이 서려 있다.
또 가야금은 멸망당한 대가야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채 신라의 궁중악기로 정착됐다.
그 후 고려·조선을 거치면서 가야금은 국가의 중요한 악기였지만, 가야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대우를 받지 못했다.
이처럼 가야금 12줄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애잔한 한이 녹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야금에는 대가야 사람들의 한과 우리 민족의 애환만이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가야의 웅비하는 힘과 문화·예술적인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악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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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금 창제와 사회 통합 가야금은 6세기 전반 경 대가야의 가실왕(嘉悉王)이 당시에 연주되던 전통악기를 토대로 중국의 악기를 참고하여 만든 현악기이다.
'삼국사기' 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국 가실왕이 중국의 악기를 보고 가야금을 만들었으며, 가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각각 달라 소리음(聲音)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성열현(省熱縣) 출신의 악사(樂師) 우륵에게 명하여 가야금곡 12곡을 작곡하게 하였다"고 한다.
대가야의 가실왕이 가야금을 창제하고, 음악을 통해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 우륵으로 하여금 12곡을 작곡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음악의 곡을 작곡하기 위해서는 그 악기의 특징과 성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가야금의 창제는 가실왕의 명으로 우륵이 주도하고 가야금곡도 작곡한 것으로 이해된다.
특히 가실왕이 대가야에 속한 여러 나라들의 말이 서로 달라 이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 가야금곡을 작곡하게 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고대사회에서 음악을 통한 통치는 형정예악(刑政禮樂)이라는 표현과 같이 유학(儒學)에서 국가와 사회를 다스리는 가장 높은 단계를 의미한다.
따라서 가실왕과 우륵이 유교적인 예악(禮樂)사상을 통해 가야사회를 하나로 통합하고 개혁을 이루려고 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가야금은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라는 의미와 함께 대가야의 국가통합이라는 화합과 개혁의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가실왕이 통합하려고 했던 가야 지역은 어디였을까? 현재 우륵이 작곡했다는 12금곡의 내용은 전하지 않지만 곡명은 전해 온다.
그 곡명은 상가라도(上加羅都), 하가라도(下加羅都), 보기(寶伎), 달기(達己), 사물(思勿), 물혜(勿慧), 상기물(上奇勿), 하기물(下奇勿), 사자기(獅子伎), 거열(居烈), 사팔혜(沙八兮), 이사(爾赦) 등이다. 이들 중 상가라도, 하가라도 등 10곡은 당시의 국명이나 지명에서 따온 것이고, 보기와 사자기 2곡은 불교와 관련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