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62호입력 : 2016년 0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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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도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고운 사람만 살면 얼마나 좋을꼬? 미운 사람이 없다면 정말로 좋을까? 필자(筆者)의 글쟁이 친구 한 녀석은 “죽어서 꼭 지옥을 가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준비된 천당(극락)은 살아가면서 아무런 재미나 긴장감이 없을 것 같아서 꼭 지옥을 가 보고 싶단다. 웃음소리로.
일전에 설 연휴를 맞아 고향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께 노래를 불려드릴 기회가 있었다. 筆者(필자)의 민요 18번곡 ‘노들강변’을 불러드렸더니, 요양원에 계시다가 설 명절 특별 외출 나오신 남상 할머님이 “그거 말고 저 멀리 둘 걸로 해요.”하셔서 잠시 당황스러웠다. 진미령 가수의 ‘미운사랑’임을 짐작은 하였으나, 여성곡이고 가사도 어럼풋하여 무반주 생음악으로 불려드리기는 실로 난감하였다. 다행히 그 어른의 딸이면서 초등 후배 녀석이 같이 불려 겨우 노래가 되었다.
그 곡의 노래 말 작사가는, 진정으로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을 하고 차마 돌아서기 아쉬운 마음을, “이렇게 살려고 인연을 맺었나? 차라리 저 멀리 둘걸.”이라고 절규를 그렸고, 앞서의 가수(歌手)는 수십 년의 내공을 총 발산하여 듣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어 놓더니만, 남상할머니가 치매의 혼돈 중에서 ‘저 멀리 둘 것’을 기억하시게 하였나 보다.
꺼져가는 촛불의 기억이 고마워서 2절과 후렴(너와 난 운명인거야)도 불렸지만 ‘차라리 저 멀리 둘걸.’ 부분은 할머님이 손사래 할 때 까지 무한 반복해서 불려드렸다. 우리 모두는 ‘저 멀리 둘 것’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 단풍으로 다듬어져 있는 갈림길에서, 두 길을 동시에 갈 수 없음을 노래한 미국의 순수시인 로버트가 [가지 않은 길]에서 우리 인간사를 신중히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서 남겨둔 또 하나의 길에 애착을 갖지 말 것을 아름답게 노래하였다.
마침, 우리 고장의 자랑인 문화누리관에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사십여 년 전에 제작되어 그야말로 선풍적인 사랑을 받았던 영화를 설 연휴에 무료 상영을 하였다. 혜영역의 당시 최절정의 여배우 문희는, 유치원교사로서 사회통념상 이루어질 수 없는 유부남 신호(신영균역)을 사랑하여, 많은 사람의 눈물을 쏟도록 깜찍한 연기를 한 아역배우 정훈(영신)을 소위 ‘아비 없는 아들’로 키우면서, 짙은 모성애로 중무장하여 묵호의 바닷바람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현실의 벽이 너무나 어려워 신호의 집으로 정훈이를 보내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다시 정훈이와 묵호로 가는 열차를 타면서 스크린의 불은 꺼진다. 등장하는 여배우들의 한복저고리가 너무나 화려하여 좋았고. 지금처럼 길고긴 옷고름이 아니라 매듭단추라서 당시의 의복풍(衣服風)을 맛 보면서 젊은날의 추억을 되새김질 할 수 있었다.
요즘 드라마는 복선(foreshadowing) 이 복잡하게 많아서 꼭 괴기담(怪奇談)을 보는듯한 짜릿한 긴장감을 주지만, 신파극 같은 이야기 전개과정의 이 영화는 긴장감은 없었지만, 한 남자를 사랑하는 두 여인의 갈등이나, 유부남의 아들, 즉 혼외아를 생산하는 정말 대책 없는 정훈의 탄생은 요즘은 상상도 못할 호랑이 담배 먹는 이야기이겠지만, 역시 시대적인 정서차이일 것이다.
아마 지금이라면, 상속권을 둘려 싼 법정공방이나 인명살상을 떠올리는 복수(암투), 변호사 책상을 가득 채우는 증거자료들이 연상되지만, 등장인물들 중에 특히 본처(전계현역)의 정훈에 대한 내리 사랑은, 마음의 갈등을 성화시키는 따뜻한 우리 민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저 멀리 둘 걸!“ 하기 쉽지만, 필자(筆者)는 정훈이가 제2의 큰 바위 얼굴로 묘사된 후속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조용히 훌쩍이는 저 할머니 눈물 값이 되도록.
수필가 동화 한봉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62호입력 : 2016년 0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