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88호입력 : 2016년 09월 06일
[고령으로 귀농한 사람들 3]
준비된 귀농인의 행복한 성공스토리- 대가야 양봉 대가야읍 내상리 박대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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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대가야 양봉 박대식(63)씨가 했던 첫마디였다. “양봉은 귀농한 첫해부터 소득을 충분히 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농사 중에 하나이다. 사실 위치만 잘 잡으면 정말 괜찮은 농사라서 수확 후에는 어느 정도 판로만 정해진다면 정말 매력 있는 농사이다”고 했다.
2012년 6월 고향 고령으로 귀농해 현재 600평 규모에서 양봉을 하고 있는 박 씨는 귀농 전부터 이미 양봉에 대해서는 풍부한 경험이 있었다. 고령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내던 박 씨가 고령농고를 다닐 때 마침 학교에서 일주일에 2~3시간씩 양봉교육을 받게 되었고, 그때 이미 기초는 어느 정도 습득하고 있었다.
농고를 졸업 하자마자 집 옥상에서 15통 정도의 벌을 사서 직접 키워 보기도 했는데 너무 좋았다면서 이후에는 덕곡면 옥계로 옮겨서 결혼하고 직장 초반에 얼마정도는 주말과 여유 시간 틈틈이 벌을 키웠었다고 한다. “소방공무원으로 근무할 당시에는 고령에서 근무한 적이 별로 없이 타지로만 돌아다녔어요. 다시 고령에 오게 된 것은 퇴직을 5년 정도 앞둔 시점이었죠.” 그는 퇴직 후에는 고령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후 2011년에 이곳을 매입했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귀농을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딸 둘이 모두 결혼하고, 퇴직이 가까워지니깐 ‘퇴직 후에는 뭘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게 됐다.
또 그때까지만 해도 양봉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박 씨는 퇴직을 하고 농업기술센터에서 기술교육을 받게 되면서 주위 환경을 둘러보던 중 박 씨의 동네가 아카시아 군락지임을 알고는 자연스럽게 양봉을 선택하게 됐다. 특히 박 씨는 평소에도 일 년에 10병 정도는 혼자 다 먹을 만큼 꿀을 너무 좋아해 설탕이 들어가는 모든 음식에 설탕대신 꿀을 넣어 먹는다고 한다.
귀농 4년차인 박 씨는 현재 양복협회에서 사무장을 맡고 있다. 퇴직 전에 고령소방서에서 센터장을 맡았던 박 씨에게 양봉협회에서 총무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게 되면서 흔쾌히 승낙했다. “막상 총무를 맡아보니 어려움이 많았다. 제일 큰 문제는 양봉 동호회 회원들이 회의를 하고 싶어도 갈 때가 없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죠. 창고도 하나 짓고 회의실도 하나 만들어 보자는 의논을 끝내고는 우선 협회에서 운수 봉평리에 터부터 구입했다. 그리고 꿀을 상품화하기 위한 많은 비용이 인근 달성 등지로 유출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군에 어려운 사정을 건의하고 보조금 신청 등을 한 결과 군보조금 60%와 양봉협회 자부담40%로 지금 작업장을 짓기 위해 착공했다.
고령군에서 멘토를 맡고 있기도 한 박 씨는 벌써 제자를 여러 명 배출했고, 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는 멘토멘티 사업에 참여하면서 작년 가을부터 메티 한 두 사람도 벌써 양봉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어서 올해 5월부터는 여성 두 사람이 교육 받고 있는 중이다 . 처음 귀농할 때 고령양봉동호회엔 회원이 고령군 전체에서 고작 16명이었는데 지금은 양봉업이 홍보가 많이 되면서 34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양봉은 수익이 괜찮지만 꿀을 채취하려면 산 생활을 많이 해야 한다. 아무래도 전원생활에 잘 적응 할 수 있는 사람한테 적합한 일이다. 또 벌에 쏘여도 알레르기가 없어야 된다. 특히 벌에 겁을 먹으면 안 된다. 벌은 4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5~6월이 가장 바쁘다. 저희는 평균 11드럼 정도 뜨는데 대부분 직거래로 판매를 하며, 일 년 중 월동 기간 말고는 일은 꾸준히 있기는 해도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유 시간이 많다”고 했다.
꿀을 맘대로 먹을 수 있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 박 씨는 꿀은 상온에 보관해야 된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꿀이라도 온도 변화가 심하면 서리는 현상이 생기에 되는데 일반 소비자들은 하얗게 서린 부분을 설탕으로 오해한다. 겨울에는 꿀을 보관하는 컨테이너에 불을 넣어 13~14도의 온도를 유지시켜 서리는 현상이 생기지 않도록 굉장히 신경을 쓴다. 특히 잡화꿀이 아카시아나 밤꿀 보다 많이 서린다고 했다.
박씨는 “개인의 노력과 고령군농업기술센터의 교육지원, 직거래를 통한 소비자와의 소통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면서 지금의 결과를 낸 것이다” 라며 “앞으로 소비자가 믿을 수 있는 농산품을 생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특별히 반대는 안했지만, 문화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선뜻 따라 나서지 않았던 박 씨 부인은 지금은 문화누리에서 수영도 배우고 영화도 보면서 꽤 만족하면서 지낸다고 한다. 게다가 자투리땅엔 닭도 키우고 텃밭을 가꾸어 채소도 키우면서 자급자족을 다 하고 있다면서 “여기는 다 공짭니다” 했다.
자료제공 : 고령군농업기술센터 정리 : 성헤원 기자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88호입력 : 2016년 09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