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을 좋아해 산악회 회원이기도 한 이승 씨는 전국에 안 다녀본 산이 없다고 한다. 전라도가 고향인 이승(57)씨가 고령에 오게 된 것도 등산 때문이다. 백운동에 있는 가야산에 여러 번 오게 되면서 고령을 알게 됐다.
전남 나주가 고향인 이 씨와 경북 의성이 고향인 이 씨 부인은 20대 후반에 만나 결혼했고, 30년간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이 씨가 귀농에 대한 뜻을 얘기하자 부인이 흔쾌히 따라 큰 힘이 됐다. 귀농에 뜻이 있었던 이 씨는 마침 가야산을 등산하러 고령에 오게 되면서 ‘여기구나’ 싶은 마음에 고령을 최종 귀농지로 선택했다.
귀농을 결심하고는 2년 전 이 씨 혼자 먼저 들어왔다. 부인은 당시 고3이었던 아들 때문에 서울에 남아 있기로 했고, 1년 후 이 씨를 따라 고령으로 들어온 부인도 원래 시골사람으로 평소에 아이들 다 키우고 나이 들면 시골에 가서 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이 귀농에 뜻을 보이자 좋다고 반겼다.
이 씨는 귀농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려면 보금자리가 우선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금의 시설하우스에서 1.5km 떨어진 마을에 2013년 11월에 집터를 먼저 샀다. 그리고는 집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계부터 마무리까지 1년 정도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해 5월에 보금자리가 완성되면서 입주를 했고, 그렇게 들어오게 된 이 씨가 농사일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부딪혀 보자는 마음으로 사전 공부에 먼저 돌입했다. 이 씨는 먼저 일손이 부족한 농번기에 자발적으로 도와드리기를 했고, 그런 이 씨를 동네사람들도 진심으로 대해주었다. 이제는 마을주민들과도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정착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동네 여기저기를 다니며 농사일을 거들어 주면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귀농교육은 빠지지 않고 다니며 배웠고. 귀농모임에도 가입하면서 선배 귀농인들과 친분도 쌓고 많은 조언을 듣기도 했다”라며 “그렇게 실전 경험을 어느 정도 익히고 나서는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호박농사를 시작했어요. 우선 1천200평 농지를 먼저 임차했고, 시설하우스 3동을 짓고 애호박 모종을 심기 시작했죠. 농지의 자투리땅에는 배추, 마늘 등 각종 채소도 심었다”고 했다.
애호박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할 때는 아무래도 혼자이기 때문에 지내는데 힘든 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농사일은 혼자는 절대 안돼요. 처음에 혼자 내려왔을 때는 집도 절도 없이 진짜 막막했었어요. 둘이면 짐이 반으로로 준다는 말이 있듯이 집사람이 내려오니깐 친구도 되고, 서로에게 조력자도 되고, 말벗도 되면서 일도 훨씬 수월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사는 적어도 두 사람 이상 함께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 있어서, 그래서 혼자서 귀농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금은 하우스 3동을 짓고 있지만 앞으로는 조금씩 늘려갈 생각이라는 이 씨는 남의 집에 일하면서 요령을 익힌 덕분에 요즘은 부인과 함께 웬만한 일은 다 해결하고 있다. 그만큼 농사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애호박은 심는 시기가 정해져 있어요. 겨울을 날 사람들은 8월말~9월까지 심어서 5월 중순에서 6월 사이에 수확을 끝내고, 조금 욕심을 내고자 한다면 10월에 심기도 해요. 그리고 1·2·3월에 심는 사람도 가끔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겨울에 심으면 크는 기간이 길어져 우리는 심어놓으면 보통 40일 만에 수확해요. 또 호박농사는 무조건 크다고 금액이 좋은 게 아니거든요. 일률적으로 두께와 크기가 고르게 잘 커야 좋은 시세를 받을 수가 있어요”라고 했다.
이 씨는 서울에서 월급 받는 것보다 수입은 적어도 시골생활이 지출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선은 시설하우스 3동으로도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다. “욕심을 내어 더 늘리려고 해도 투자비가 만만치 않다”면서 “군에서 지원 받는 것 빼고는 하우스 한 동에 2천만원 가까이 자부담이 들기 때문이다”고 했다. 덧붙여 “요즘은 귀농 붐으로 땅값이 너무 올라 매입에 어려움이 있다. 또 아직은 초보농사꾼이고, 투자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씨는 “마을에서 불과 500m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아직도 인터넷을 못 넣고 있다”며 “고령이 난시청 지역이라 전신주를 따로 세워야 된다면서 많은 비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문화생활이라고는 접할 수 없는 현실에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옆에서 지켜주는 부인이 너무 고맙다”며 “앞으로 귀농생활을 해나가면서 부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여가수단 및 취미를 찾아 볼 생각이다”고 했다. 귀농의 어려움을 늘 깨끗한 자연과 조용한 환경에서 오는 육체의 건강으로 서로 보듬어 주는 애틋한 부부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다.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191호입력 : 2016년 10월 0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