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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현장을 찾아서(4) 무너진 하늘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39호입력 : 2017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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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현장을 찾아서(4)

ⓒ 고령군민신문

무너진 하늘
ㅡ 반민특위의 좌절과 김상덕 선생


8.15뒤에 38선 남녘에는 일본군 대신 미군이 점령군으로 들어왔고(9월8일)일장기가 펄럭이던 자리에 성조기가 올라갔다.
미군정은 백범 김구선생이 이끌던 중경임시정부도 몽양 여운형 선생이 주도하던 건국준비위원회도 깡그리 무시하고 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야했다. 드골 장군이 개선장군으로 당당하게 파리에 입성하여 대통령이 되는 것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모습이고 여기에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신 친일파들을 대거 기용하여 승진시켰고 일제가 물러가고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던 친일파들은 더 좋은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일제에 충성하던 자들이 미국에도 충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번 민족을 배반한 자들은 두 번 세 번 민족을 배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 군대 학계 교육계 경제계 종교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친일파들이 대거 득세를 하고 지금까지도 친일파 후손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이북에서 도망쳐온 대량의 친일파들까지 합세하여 그야말로 이남은 친일파들의 천국이 된 것이다. 친일파는 바로 친미파가 된다. 심지어 일제가 두려워 떨고 사상 최고의 현상금을 걸고(김원봉 100만원:현 시가 320억 추정, 김구 선생 60만원, 김일성 2만원) 잡으려했던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선생은 악질 친일 경찰 노덕술에게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는 수모를 겪다가 월북을 하여 거기서도 숙청을 당한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 공포되고(1948.9.2.)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는데(1949.10월22일), 반민특위의 활동을 주도할 조사위원은 각도에서 호선된 10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데 위원장으로 우리 고장 출신으로 중경임시정부 문화부장(장관급)을 지낸 제헌의원 영주(令洲) 김상덕(金尙德)선생(1892~1956), 부위원장으로 서울 출신 김상돈(金相敦)의원이 선출된다.

그리하여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7000여명 체포를 시도하여 박흥식, 최남선, 이광수, 노덕술, 최린, 배정자 등이 체포되는데 이광수는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다는 궤변을 늘어놓았고, 3.1운동의 33인 서명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최린은 재판을 받을 자격도 없다며 광화문 네거리에서 총살 시켜달라고 했다는데 그 반성하는 모습이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그러나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려했던 반민특위는 친일파 세력이 장악한 미군정의 체제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승만의 사주를 받은 친일경찰들의 습격을 받고(1949.1.25)결국 반민족행위처벌법은 폐지된다(1949.8.22)

4년 2개월 정도 나치독일의 지배를 받던 프랑스에서는 약 30만명으로 추정된다는 친독행위자 가운데 12민7천 건이 재판에 회부되고 9만 7천여명이 5년에서 사형까지 처벌을 받는데 8000~10000명이 처형되었다는데, 특기할 것은 친독행위로, 백만장자가 된 경제인이 징역5년에 처해졌는데 비해 원고지 6매 정도의 글로 친독행위를 한 문필가에게는 극형에 처해졌다.

문필행위에 두는 프랑스의 높은 비중이 놀랍고 경탄스럽다. 우리는 어떤가?다쓰시로 가즈오(達城正雄)로 성과 이름을 바꾸어 가미가제 특공대를 찬양하는 등 친일의 필봉을 내갈기던 서정주를 비롯 숱한 친일 문인들 가운데 단 한사람의 처벌도 반성도 없었다.

4년2개월 정도의 나치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역사 청산이 저러한데 우리는 40년 일제 지배 아래 150만 정도로 추정된다는 친일행위자(민족문제연구소 간 친일인명수록자 5207명)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처벌 받지 않았다.

그래서 민족정기는 사라지고 독재가 이어졌고 세 번 째 민주정부가 들어섰다는 지금도 정신대 문제조차 정리하지 못하고 한.미.일 동맹체제로 치닫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북핵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사드이고.
김상덕 선생은 한국전쟁 때 이른바 모시기 작전으로 납북이 되고 마는데 이 모든 민족의 비극이 역사청산을 못했기 때문이다.

김상덕 선생의 아들 김정육 선생(82)은 납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50세가 넘도록 취업도 못하고 40세 넘어 혼인한 부인과도 사별, 얼마 전에는 38세의 외아들 김진영 씨 마저 만삭의 부인과 세 살 난 딸을 남겨둔 채 말기암으로 잃었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것,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희망을 주는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다”(알베르 까뮈)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239호입력 : 2017년 09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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