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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기고/칼럼

[수필] 낙엽을 태우며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20년 10월 13일
이제 제법 날씨가 가을답다고 하였더니 벌써 나뭇잎들이 옷을 갈아입고 겨울여행을 준비하는 듯 고운 나선을 그리면서 땅에 내려앉고 있다.

한국문인협회진흥이사/수필가
동화 한봉수

낙엽들이 천천히 떨어져도 되련만, 어린 시절 학교가 파하고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오래 동안 하여 초조히 기다리다가 열린 문을 박차고 나오는 모습처럼 경쟁이라도 하듯 곤두박질치고 있다. 아까운 마음이야 색 바래며 찢어지더라도 그냥 두어 한동안이라도 더 보고 싶지만, 바람이 불때마다 이리저리 뒹굴면서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모양들이 귀찮아 질 듯 하여 아침나절에 쓸어놓은 마당을 또 다시 쓸어 모은다.

매일같이 쏟아져 내리니 쌓아두기도 거추장스럽고 자루에 담아두는 것도 양이 많아져서 조금씩 불을 놓아 태우기로 하였다. 거름이라도 만들까 생각지 않은 것이 아니나 바람에 흩어져 어지러워지는 것이 너무나 힘겨워 작은 계책을 세운답시고 재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한 세월 지내다 책무를 다한 듯 훌훌 털어 놓고 사라져 가는 낙엽들이야 무슨 미련인들 있겠냐만, 보내는 마음으로 곱씹어보니 무슨 송별회라도 해야 할 것처럼 허전한 것은 또 무슨 변고란 말인가?

낙엽이 완전히 마른 후에 태우면 쉬우련만 아직 덜 마른 것들의 화형식을 하자니 곤욕스러움이 여간 아니다. 불꽃이 일어나는가 싶으면 쉬이 꺼지고 아예 쓰레기 된 나뭇잎 무덤 속으로 자맥질하여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실바람을 타고 큰 웨이브를 그리면서 승천하고 있는 연기가 아직 다비식이 진행되고 있음을 겨우 알려줄 뿐이다. 차라리 진화하였다가 얼마간의 말미를 주었다가 닦달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로 잠시 고민하였으나 그냥 두기로 하였다.
아주 어린 시절에 할머님이 마당의 왕겨불로 풀 먹임 삼베를 은근히 말려서 실타래를 만드시던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일기예보도 해박하지 않았으련만 어떻게 알아내셨는지 맑고 바람 없는 날 많은 사람이 나서서 베틀에 걸기 쉽도록 하는 실마리 작업을 하실 때, 꼭 이것들처럼 불꽃이 보이지 않으면서 알맞은 열을 이용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을 말이다.

이런 작업을 하시는 날의 할머님은 정말 무섭도록 흩어짐이 없는 모습이셨다. 윤이 나는 머리모양이야 늘 보여 주시던 모습이셨지만, 마당 가장자리 서너 곳에 물동이를 준비하시고, 일 하는 사람이나 구경하는 어린 손자라 할지라도 뛰거나 장난을 칠 요량이면 어김없이 눈물이 나도록 꾸중을 하시면서 고함소리가 크게 나시곤 하였다. 평소에도 단언하시는 기품을 가지시긴 하였지만 이때만큼 날선 모습을 보인적은 드물었다.
모두가 기와집이거나 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초가집들이 많았으니 화재라도 나면 그야말로 큰 낭패이니 이러 하셨을 거란 짐작은 유추되지만 정말 찬바람 나는 모습이셨다. 해가 하늘 중천에 있어도 할머님이 “그만하도록 하자.”하시면 모두 작업을 멈추었고 군인들 훈련장보다 더 빠르게 처리를 하시곤 하였다. ‘언제 왕겨불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깨끗이 마당이 정리되고 나면 그때서야 “아가야 이리 오너라” 하시면서 치마의 안쪽에 꿰차고 계셨던 붉은 복주머니 속의 곶감을 내어주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할머님은 평안히 계실까? 일전에 벌초를 하면서 잠간 뵙긴 하였지만 집안의 선조님들의 묘지가 워낙 많아서 다정스레 안부를 묻지를 못하고 내려 온 것이 마음에 걸림돌이 되어 불현 듯 다시 할머님을 찾아뵙고 싶어진다. 할머님의 손이라도 잡고 그렇게 조그마한 어깨라도 주물러 드리면서 ‘할머니 보고 싶어 왔어 예’ 하고 찾아가면 지금이라도 ‘아이고 내 새끼 왔나? 어여 들어 오이라’하시면서 무덤의 문을 열고 나오실 것 같다. 항상 무명이나 삼베로 된 치마저고리를 입으셨던 할머님의 옷에서는 사각사각 하는 소리가 났었다. 풀을 먹인 옷자락들이 서로 스치면서 내는 소리였는데 꼭 요맘때쯤 노래하는 귀뚜라미를 닮은 소리였었다.
유난히도 타지 출입이 많으셔서 혹한이나 혹서기를 제외하곤 집에 계시는 날이 출타 하신 날보다 적으셨던 할아버님의 옷 수발만큼은 수하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당신이 직접 하셨었지. 많은 손자들중에 유난히 작았던 막둥이를 당신 무릎에서 내려놓으시고는, 할아버지 주위를 빙 둘러 보시면서 행여 남은 실밥이며 풀 덩어리를 손톱으로 긁어내시곤 하셨다.

얼굴은 웃음기를 온 가득 품고 그윽하게 할아버님을 바라다 보시면서도 말씀은 않으셨고 할아버님도 그저 ‘으험 으험’ 하는 기침만 몇번 하시고는 곧장 “밖에 아범 있느냐?” 하시면서 여행을 가시곤 하셨지.
할아버님의 모습이 동구바깥의 굽은 길을 완전히 벗어나실 때까지 눈길을 떼지 않으시던 할머님은, 한 달이나 빨라도 수일은 지나야 오실 것이며 또 새로 빨래하여 손질한 옷을 입으실 것이지만 “서동댁, 대주님 빨래부터 하시게나.”하시면서 빨랫감을 내 주셨다. 물론 할아버님의 옷은 다른 사람들의 옷과 함께 빨지 못하도록 하시면서 정성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마을 전체가 우리 성씨로 이루어진 집성촌이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할머님은 누구나 만나면 “밥은 먹였냐?”하고 물으셨다. 이는 ‘식사를 했냐?’ 하는 물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 밥을 챙겨 주었느냐?’ 하시는 물음이셨다. 물론 아니라고 할 사람은 없었으나 조금이라도 대답이 늦게 나올 양이면 혀를 껄껄 차시면서 “어멈 보내게” 하셨으며, 이것은 불구자나 거지가 동냥이라 하여 구걸해 오면 누구나 식사를 하도록 하던 당시의 풍습의 일면이기도 하거니와 유난히 정이 많으셨던 할머님의 후덕함의 모습이셨던 것이다.
이렇도록 다정하신 할머님이셨지만, 어린 손자라할지라도 책상에 앉지 않고 방바닥에 엎드려 누워서 책이라도 읽는 모습을 보시면 그야말로 천둥보다 크고 야멸치게 꾸중하시면서 용서치 않으셨고 급기야는 바쁜 일과를 미루고서라도 당신의 방으로 불러들여 무릎이 아플 때까지 꿇어 앉혀 놓으시고 “우리 조상님들은......”을 가르치시던 분이셨다.
많은 손자들이 이렇게 눈물 나는 훈육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다른 형제나 사촌이 볼 수 없었던 것은 나이 차이가 있어서 교육받을 시기가 다른 면도 있었겠지만, 할머님의 깊은 사랑의 배려로 어린 가슴의 부끄러움을 셈 하시면서 가슴깊이 새길 시간을 주시고자하신 방법으로 따로 불러서 훈육을 하셨으니 벌 받은 줄은 알지만 누구도 아는 척을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시던 그 날도 꼭 요맘때였었다. 그렇게 넘치는 살림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셨던 성품처럼, 오곡이 풍년들고
모두들 마지막 갈무리를 하는 가을 끝자락에 꽃가마를 타셨다.

할머님 생각을 하고 나니 제법 두텁게 쌓여 있던 낙엽들이 다소곳이 재로 변하여 있다.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될까?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하는 동요처럼 손 내밀면 닿을 듯이 만져지는 고향 언덕바지에 낙엽 태우는 향기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낙엽을 쓸어 넣기를 반복해 본다. 약간 굽어 먼 산을 바라보는 자태의 소나무가 묵묵히 지키고 있는 할머님의 영원한 집에 손자의 눈물이라도 실어 보내면 꿈에라도 할머님을 뵈올 수 있을 것 같다.


고령군민신문 기자 / kmtoday@naver.com입력 : 2020년 10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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